작년말부터 한·미 정부 당국자들과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02년이 자칫하면 1992년의 재판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은밀히’ 회자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라는 시한폭탄의 시침이 계속 돌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목소리였다.

◆1992년과 2002년 상황 간의 유사성 = 92년과 올해 상황의 가장 닮은 점은 한·미 두 나라가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92년과 마찬가지로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92년 당시 대선을 치렀던 미국은 오는 11월 연방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 3분의 1이 바뀌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선거의 해에는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정책 결정 사항이 다음 정권으로 미뤄지거나, 오히려 선거용으로 과도하게 이용되는 극단적 경향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92년의 경우, 한·미 두 나라 모두 대선을 앞둔 상태라 한국과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북한 간의 핵사찰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중재자로 나설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IAEA와 북한 간의 갈등은 다음해인 93년 3월 12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이어져, 94년 봄 미 정부가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검토하고 서울에서 ‘라면 사재기’가 일어나는, 심각한 한반도 위기상황을 연출했다.

올해 부시 정부는 92년과는 달리 ‘테러와의 전쟁’을 중간선거까지 계속 이어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침체라는 선거 악재(악재)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북한의 WMD 문제 등이 ‘테러위협’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92년과 2002년의 유사성은, 그 직전까지 남북 또는 미·북 차원에서 유례없는 대화노력이 펼쳐졌다는 데 있다. 남북은 91년 12월 양측 총리 간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기본합의서’를 채택했고, 미·북 역시 92년 1월 사상 최초의 고위급 접촉을 가졌다.

올해의 위기도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 그해 10~11월 조명록 북한군 차수와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의 워싱턴·평양 교환방문 뒤에 닥친 일이다.

IAEA 사찰이 현안으로 등장하는 것도 유사하다. IAEA는 당장 북한 과거핵 활동에 대한 사찰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이점 = 92년 당시 아버지 부시가 임기 마지막 해에 북한 핵문제를 다룬 것과는 달리, 아들 부시 대통령은 이제 취임한 지 1년밖에 안된 상태다.

따라서 레임덕 걱정없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입장이다. 또 핵문제가 전면에 부상했던 92년과 달리, 올해 북한 WMD 문제는 미사일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92년에는 베이징 참사관급 접촉에만 의존했던 반면, 현재 미·북 간에는 다양한 외교채널이 있고, 또 핵과 미사일에 관한 기존 합의들(94년 제네바합의, 99년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에 관한 베를린 선언)이 있는 것도 차이점으로 지적된다.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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