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국 대통령이 29일 국정연설을 통해 대북한 강경 입장을 표명함에 따라 앞으로 북한의 획기적인 자세변화가 없는 한 미·북 간의 냉기류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부시 대통령의 이날 연설의 가장 큰 의미는 테러조직 소탕과 함께 북한·이란·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위협 방지를 테러와의 전쟁의 2대 목표로 분명히 제시했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말 이라크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한 그의 언급은 기자의 질문에 예고없이 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올 한 해의 국정 방향을 밝히는 준비된 연설이다. 이들 3개국 중 북한을 첫 번째로 지목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는 “9·11테러 이후 몇몇 국가들은 매우 조용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진정한 속성을 안다”면서 “북한은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미사일과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들은 핵과 미사일, 화생방무기 등 3박자의 위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북한이 가장 경계 대상이라는 말을 흘려왔었다.

게다가 부시의 발언 수위는 북한이 ‘적대적’이라고 여길 만큼 강도가 높다. 이란·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한 축’이라고 규정했으며, 이들 나라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거나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 또는 공갈할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무관심하게 있다가는 ‘재앙적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말로, 확실한 예방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같은 부시의 발언은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최고 지도자 오마르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다소 풀어진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 그런 만큼 당장 이들 3개국으로 확전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부시가 작년 6월 3대 대북 의제로 제시한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재래식 군사력 문제에 대해 섣불리 ‘당근’을 제시하기보다는 단호한 자세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부시 행정부가 이 같은 자세를 갖고 있는 한, 설혹 미·북대화가 재개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과거의 입장에서 ‘대폭’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양국이 관계진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열쇠는 체제 위협을 더욱 느끼게 된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북한이 ‘관망’하면서 빗장을 꽁꽁 걸어 잠그면 현재와 같은 긴장관계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 또는 수출, 핵개발 재개 등을 모색할 경우에는 1993~94년과 같은 전쟁위기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대중 정부는 2월 중순으로 예정된 부시의 방한을 계기로 미·북과 남북 간의 물꼬를 다시 터보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기대했던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해를 ‘테러와의 전쟁의 해’로 규정한 데 이어 이날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힌 부시의 신세계전략에 따라, 한반도는 앞으로 상당기간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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