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집 '모래위의 시간' 낸 염무웅 교수


60년대 후반부터 ‘강고한 진보주의자’로서 민주화운동과 평론활동을 펼쳐온 문학평론가 염무웅(61) 교수(영남대 독문과)를 지난 24일 서울 명륜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최근 평론집 ‘모래위의 시간’(작가)이 사뭇 논쟁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경산에 사는 그는 마침 눈병 치료차 서울에 와 있었다./

―50~90년대에 이르는 민족민주예술운동이 주류로 성공했다고 보는가?
“진보적 문학운동은 점진적으로 성장했다. 민중역량 자체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작용과 반작용은 있다. 4·19, 광주항쟁, 6월항쟁에서 민중역량이 고조됐다가 다시 반격이 이어졌다. 87년부터 지금까지는 일정하게 이루어졌던 민주화가 퇴조하는 기간이다.”

―당신은 문화예술인들의 남북교류가 정치에 예속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영역의 독자적 교류는 어떻게 추진돼야 하는가?
“두 가지다. 문화 영역의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교류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건 금물이다. 북이나 남이나 내부 개혁에 촛점이 가야지.”

―우리에게 내부 개혁이란 가령 국가보안법 철폐인가?
“행동으로 나타나지도 않은 신념·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명이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다. 현행 국가보안법 자체도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폐해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합법적인 공간에서 최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너머의 일을 주장해야지, 개량적인 일은 안하고 최대치만 요구하는 것은 문제다. 말하자면 온건주의다.”

―현재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오래 전부터 걱정해온 인구, 식량, 오염, 핵무기 문제 등 비관적 종말 위기를 기술적으로 극복하는데 성공해오지 않았는가?
“종말은 연기된 것이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과제는 여전하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보면 자본주의는 몰락의 길을 걸어 종말에 이를 것이다. 그 사람은 ‘이행기’라는 말을 쓴다. 그 다음은 모르겠다. 다만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법칙적 이행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가 다음 체제를 결정할 것이라 말했다. 어떤 생태주의자는 지금의 지구를 ‘집단적 자살체제’라고 말했다.”

―“살인적 무한경쟁으로 질주하는 지금의 ‘속도’에서 벗어나자”고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은가?
“지표가 책이다. 과거 돈 버는 것, 컴퓨터 관련, 세상의 주류에 끼기 위한 기술적인 책 많이 팔렸으나, 자본주의가 전 지구를 통일하고 단일 패권을 차지한 이후 불교, 노자 강의, 느리게 사는 것 등에 사람들 관심 많다.”

―당신은 이번 책에서 ‘북한이 옹호할만한 국가체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나는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조심스럽게 얘기해야만 될 것이고, 내 말이 조선일보의 특정한 입장을 거드는 데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남북이 그냥 서로 원수처럼 욕만 하고 대결만 하고 있을 때는 입을 다물었던 문제들, 다시말해 북한이 국가로서 정상적인 체제를 가진 국가냐하는 문제를 피차 터놓고 거론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식 사회주의라고 하는데, 그게 사회주의이기는 한가. 현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만한 국가체제인가 의문이 든다.”

―제일 큰 문제는 부자세습 때문인가?
“북한이 왕조가 아니라면 체제와 지도자가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고,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민족과 전통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근대성을 소홀히 하고 말았다. 남쪽은 연합국 승리로 국가의 출발이 외세의 영향에 빚지고 있다. 외세의 영향에 의한 근대화 추구는 민족성 확립을 희박하게 했다.”

―급진적 젊은 후배들의 비난이 없겠는가?
“나는 딴 목적은 없다. 진심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빛정책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햇빛 정책이 제대로 되려면 이것을 따져야 한다.”

―당신은 창작과비평사의 발행인을 했다. 창작과비평과 조선일보가 불편한 관계인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창비와 좀더 불편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안다. 젊은 비평가들이 문화권력 논쟁을 제기했다. 언론권력도 있고 문학권력도 있다. 권력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사회는 원시공산사회 이후 권력작용이 불가피했다. 조선일보는 보수적 지향이고 창비는 기존 세력과의 관계를 혁파하려는 입장이다. 지향에서는 상반이다. 조망에서 방향을 달리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관계인 점도 있다./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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