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에 도전했나, 선제공격 당했나


리영호


북한이 16일 군 최고 실세인 리영호(차수·총참모장)를 전격 경질한 것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인사(人事) 발표는 그간 북한의 관행 등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례적이고 특이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리영호의 해임 이유로 '신병 문제'를 들었지만 리영호는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8일까지 김정은을 수행했다. 대북 소식통은 "결국 최근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당 출신으로 군부 핵심에 진입한 장성택(대장)·최룡해(총정치국장)와 야전군 출신인 리영호 간에 권력 암투가 벌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이 리영호 경질을 전격 발표하면서 동시에 "남한과 미국의 지령을 받고 북한에 침투한 테러범을 적발했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 대북 소식통은 "리영호가 반대파에게 국경 방비 부실 등의 꼬투리가 잡혔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장성택 라인에 도전하다 반격을 당했거나, 선제공격을 당했을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또 북한이 리영호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기 위해 소집한 정치국 회의는 김정일 시대에는 거의 열린 적이 없다. 정치국 회의는 공산당 최고의사결정 기구이지만 북한에서는 유명무실했다. "김일성 시대 1인 독재 체제가 굳어진 이후 정치국 회의는 '박수 부대'로 전락했고, 김정일은 그나마 제대로 열지 않았다"(고위 탈북자)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국 회의를 개최했다는 북한 보도가 간혹 나왔으나 '핵심 실세'의 경질을 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리영호 경질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급히 인민들에게 알려야 할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북한은 권력 암투 과정에서 제거된 인물이 있을 경우 '교통사고' 등으로 위장하거나 관련 내용을 비밀에 부쳐왔다. 김정은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라이벌이던 리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은 보도했고,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총살당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은 어느 순간 북한 보도에서 사라졌다.

북한이 리영호 경질을 발표하면서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조직 문제가 취급됐다"고 언급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리영호 경질을 조직 문제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며 "리영호가 맡고 있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숫자가 리영호 해임으로 축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 조직 혹은 군 조직에 중요한 변화가 결정됐을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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