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호 경질… 군 핵심에 당 출신 임명, 北 선군정치 약화되나
경찰·정보 수장엔 軍출… 김정은, 권력기관장 물갈이


북한군 최고 실세로 불리던 리영호 총참모장의 실각으로 "북한의 군과 공안기관 수장들이 김정은 시대를 맞아 모두 물갈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3월 경찰 격인 인민보안부의 주상성 부장이 해임되고 다음 달 군 출신인 리명수 국방위 행정국장이 기용된 것이 신호탄이었다. 지난 4월 제4차 당대표자회를 전후해서는 우리의 국가정보원장 격인 국가안전보위부장(우동측→김원홍), 국방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김영춘→김정각), 인민군을 사상적으로 지도·감시하는 총정치국장(공석→최룡해)에 대한 인사가 이뤄졌다.

군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는 황해남도 책임비서 출신으로 군과는 거리가 멀다. 당 출신인 최의 군 장악과 리영호의 실각을 놓고 "선군(先軍)정치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임 보위부장이 된 김원홍도 군 총정치국 출신으로 정보 업무와는 인연이 없다. 과거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지낸 김정각 정도가 친정으로 돌아간 유일한 경우다. 정부 소식통은 "군·공안 기관에 직접적 인연이 없는 인물을 쓰는 게 김정은의 권력 장악 인사의 특징"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영결식 당시 리영호(사진 오른쪽 원) 북한군 총참모장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등과 함께 운구차를 호위하고 있다. 북한은 16일 리영호 총참모장 전격 경질을 발표했다.


◇군부 강경파 대 민간 실용파

북한 전문가들은 지난 4월 최룡해의 총정치국장 기용을 계기로 2009년 2월부터 3년간 경쟁자 없이 군부 내에서 독주해온 리영호가 강력한 견제에 직면했다고 본다. 총참모장은 전시(戰時) 지휘 계통상 북한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막강한 자리다. 이 총참모장을 견제하는 조직이 총정치국이다.

대북 소식통은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의 와병과 사망(2010년 11월)으로 한결 느슨해졌던 총정치국의 군 감시 기능이 최룡해 등장 이후 강화되면서 리영호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최의 기용 자체가 리영호 제거를 목적으로 이뤄진 사전 조치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또 리영호가 대표하는 군부 강경파와 최룡해가 대표하는 민간 실용파의 대립에서 군부가 무릎을 꿇은 것이란 해석도 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2009년 1월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 직후 발탁된 리영호와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이 강경 군부의 대표주자"라며 "2009년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 조치들은 대부분 이들이 주도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의 지난 2월 핵 합의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도 군부 강경파"라며 "미국으로부터 영양지원 24만t도 못 받게 되고 미사일 발사마저 실패하자 리영호의 입지가 좁아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정일 인맥' 대 '김정은 인맥'

김정은은 후계자 시절부터 군 인사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전방 사단장과 연대장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장교들을 기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에 승승장구했던 군 간부들의 불안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작년 일선부대에 근무하던 60세 이상 장교들의 옷을 모두 벗기면서 이들의 반발이 컸다는 첩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4월 당대표자회에서 군부 3대 요직 중 총정치국장(최룡해)과 인민무력부장(김정각) 인사를 단행하면서도 김정일이 발탁한 총참모장 리영호는 유임시켰다.

◇장성택파대 비(非)장성택파

리영호의 실각을 통해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탄탄한 입지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치안정책연구소의 유동열 선임연구관은 "최룡해는 장성택의 아바타(분신)"라며 "리영호가 자신을 제치고 군부 1인자가 된 최룡해를 불편해하다가 장성택의 미움을 샀을 수 있다"고 했다.

장성택은 인민군 장성 출신의 두 형 장성우(2009년 사망)와 장성길(2006년 사망) 덕에 북한 군부 내에 자기 사람들을 많이 심어놓았다. 정통 야전 사령관 출신의 리영호는 실력 하나로 총참모장에 오른 경우로 장성택과는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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