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이산가족 후보자 명단을 통해 가족 소식을 전해들은 남쪽의 이산가족들의 사연은 가족들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17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상황실에는 북한적십자회가 발표한 북쪽 이산가족 후보자 명단을 확인하기 위한 온갖 사연의 가족들로부터 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또 직접 적십자사를 찾아 명단을 확인하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혼자 자식을 기르다 북한에 살고 있는 남편 소식을 들은 아내가 있었고, 의용군에 끌려가 죽은 줄로 알고 제사까지 지냈던 형이나 동생 소식에 울음보를 터뜨리는 형제·자매들의 사연도 있었다.

평생을 수절하며 두 아들을 키워온 이끝남(72·경북 안동)씨는 남편 이복연(73·건설노동자)씨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가 남편과 헤어진 것은 6·25가 터진지 며칠뒤 서울에서였다. “고향으로 피란가자”며 피란길에 쓸 자전거를 사러 나간 남편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다. 이씨는 “남편이 북한에서 새 장가를 들었겠지만, 북한의 가족들과도 모여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강석(64ㆍ전 부산동여중교장)씨는 북측 이산가족 명단에 셋째 누나 봉순(66)씨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48년부터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누님이 전쟁통에 소식이 끊겨 죽은 줄로만 알았다”는 이씨는 “당시 편지로 자주 소식을 전하던 누님이‘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6ㆍ25때 의용군으로 징집됐던 오빠 유장순(68)씨가 북한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여동생 유정래(65ㆍ인천 강화군 송해면)씨는 “오빠 이름을 부르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씨는“오빠가 의용군에 끌려가면서 ‘잠시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것이 50년이 지났다”며 “아버지가 생전에 이런 기쁜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북한의 최필순(77)씨는 아내 주증연씨를 찾았으나, 주씨는 41년전에 세상을 떠나 가족들의 아픔이 더했다. 딸 양옥(57)씨는 “대학생이던 아버지가 전쟁중에 행방불명돼 홧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눈물을 흘렸다.

한명은 북으로 가고, 다른 형제는 국군이 되어 전쟁을 치렀던 비극의 형제도 있었다. 북에 살고 있는 전덕찬씨의 생존 소식을 들은 동생 인찬(63·강릉시 내곡동)씨는 “6·25때 경찰관으로 근무했던 형님과 소식이 끊겼으나 북에 계신 것이 확인됐다”며 “7남매중 둘째인 희찬(66) 형님이 국군으로 참전했다 사망, 남다른 분단의 상처를 안은 채 살아왔는데 이제야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섭기자 dskim@chosun.com

/정성진기자 sj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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