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동중국해상에서 발생한 괴선박 침몰 사건 에 대해 일본 정부와 언론은 과거의 사례 등으로 미루어 북한 공작선일 가능성이 높 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사건 발생 이틀이 지난 24일 현재 확실한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괴선박의 정체는 일본 방위청은 23일 이번 사건이 '지난 99년 일본 노토(能登)반도 해상에서 발 생한 괴선박 출몰 사건과 비슷하나 현시점에서 단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말로 괴선 박이 북한 공작선일 가능성을 거듭 시사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99년 사건 당시에는 노토반도에 출현한 괴선박이 북한내 항구에 입 항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괴선박을 북한 공작선으로 단정, 항의문을 북한에 보 냈었다.

방위청은 이번 사건에 대해 '대잠 초계기 P3C가 촬영한 화상을 분석, 종합적으 로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는 괴선박의 무선 수신 내용을 확보했다는 지 적도 나오고 있다.

언론들은 24일 사건 해역에서 인양된 승무원의 구명 조끼 등에서 한글 글자가 발견됨에 따라 이 괴선박이 북한 선적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전했다. 해상 보 안청이 공개한 이 구명 조끼에는 조끼의 치수, 섬유 혼용률 등이 제조 업체와 함께 한글로 쓰여 있다.

당초 일본 정부내에는 괴선박이 중국 방향으로 도주하고 중국 깃발을 내건 점 등으로 미루어 중국의 밀항선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 졌다.

특히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괴선박 추적 과정 등에서 중국측 배타적 경제 수역(E EZ)에 들어감으로써 정부내에서는 한때 긴박감이 감돌기도 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 다.

일본 외무성은 괴선박이 북한 선박으로 확인될 경우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강력 히 항의한다는 방침이나, 괴선박에 타고 있던 승무원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등 현재로서는 괴선박의 정체를 단정할 결정적인 단서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 로 보인다.

◆괴선박 침범 목적은 괴선박이 북한과 관련돼 있을 경우 마약이나 위조 화폐 등을 일본 영해 부근에 서 거래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외무성 관계자들은 미 테러 참사로 세계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테러를 겨 냥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고 있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은 테러가 목적이라면 15명의 승무원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일본에 유입되는 마약의 절반 이상이 북한 경유라는 정보에 비추어 마약 밀수를 노 렸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몇차례 발생한 바 있다. 지난 98 년 8월 태평양상에서 적발된 마약 밀수 사건때 체포된 어업 관계자는 '북한 공작선 과 해상에서 합류했다'고 진술했으며, 97년 일본 국내 항구에 기항한 북한 화물선 에서 대량의 각성제가 발견되기도 했다.

괴선박 사건이 발생한 해역은 중국, 대만, 한반도에 가까워 밀수, 밀입국 거래 의 무대가 되는 등 `해상 범죄의 다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한 전문가는 동중국해가 '90년대 전반에는 중국.대만과 일본을 잇는 각성제와 총기 밀매, 그 후에는 범죄 조직에 의한 밀항자 인수의 현장이 돼 왔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정보 수집설도 제기되고 있다. 미 테러 참사 발생후 일본 자위대와 주일 미군의 반응을 살펴보려 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다.

◆왜 침몰했는가 일본 관계자들은 해상 보안청 순시선의 선체 사격으로 인한 피해치고는 괴선박 이 지나치게 빨리 침몰한데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22일 교전 과정에서 괴선박이 쏜 기관총 소리와 다른 폭발음과 같은 소리가 들린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자폭설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해상 보안청측은 괴선박에 총 186발을 발포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해상 보안청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는 갑판에 구멍을 내는 총탄이며 폭발로 이어지는 작열(灼裂)탄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침수로 인한 침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관실이나 선체 바닥이 어느 정도 침수돼 선체의 중심 균형이 무너진 상황에서 큰 파도가 덮쳐 침몰했을 가능성도 있 다는 것이다.

◆승무원 구조 노력은 없었나 해상 보안청 설명에 따르면 괴선박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은 침몰과 동시에 바다에 뛰어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풍속 13m의 바람과 3-4m의 파도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구명 조끼 등을 입은 약 15명의 승무원이 바다에 표류하는 것이 적외선 감시 장치 등으로 확인됐으나 침몰후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난 밤 11시 45분께 이들의 행방은 `시야'에서 전원 사라지고 말았다.

괴선박이 침몰하기까지는 불과 4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의 바다 온도는 18도 정도로 이 정도의 수온으로는 생존 가능 시간이 7시간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해상 보안청측은 '깜깜한 밤에 서치 라이트와 적외선 장치로 15명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파도가 거칠어 순시선의 엔진을 멈추고 바다에 뛰어내린 승무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무리였다는 설명이다.

보안청 관계자는 이와 함께 한국에서 발생한 실례를 들어 '구조된 승무원이 갑판에서 수류탄을 터뜨리는 등 자폭 행위를 할 가능성도 우려됐다'고 밝히고 있다.

◆도주에 왜 실패했나.

괴선박이 끝내 순시선의 추적을 뿌리치지 못한데는 당시 해상의 파도가 거칠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럼에도 괴선박이 순시선의 추적을 받으면서 전속력으로 도주하지 않은 점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 침몰한 괴선박은 99년 3월 노토(能登) 반도 해상을 침범한 괴선박과 형태와 크기(100t 정도) 등 특징이 비슷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99년 당시에는 괴선박이 30노트의 빠른 속도로 도주, 일본 순시선의 추적을 뿌리쳤으나 이번에 침몰한 괴선박은 해상 자위대 P3C 초계기의 발견에서부터 12시간 동안 90㎞를 이동하면서 평균 4노트의 속도 밖에 내지 않았으며 순시선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에서도 속도가 최고 15노트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성능 엔진을 가진 선박이라도 역풍 속에서는 제 속력을 내기가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다./도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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