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 대통령이 26일 북한에 ‘대량살상무기 개발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미국이 기존 입장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일 뿐”이라며, 특별한 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이다.

홍순영 통일부 장관은 27일 국무회의에서 “부시 대통령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발언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고 보고했다. 외교부도 27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그룹(TCOG)회의에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도 부시 대통령 발언에 대해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검증’을 요구해 왔으며, 26일 발언도 이를 다시 한번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전쟁 대상으로 규정한 ‘테러’와 연계해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아프간의 탈레반 등의 테러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정보가 잡힌 것은 없으나, 앞으로 이 같은 정보가 포착될 경우,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그동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는 대화를 통한 ‘검증의 대상’이었으나, ‘테러’와 연계될 경우 곧바로 ‘전쟁의 대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또 북한이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해 미·북대화 재개 시기가 더욱 멀어지게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미국의 아프간 공격 직후처럼,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북적대시 정책에 입각한 자주권 침해’ 등으로 반발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대화’의 문을 열어둔 부시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정반대의 관측도 있다. 북한은 27일 오후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 허용범기자 h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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