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협력이 사실이라는 미 백악관의 발표가 현재 진행 중인 미·북(美北) 핵 협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백악관 발표에 대한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고, 미국은 ‘과거지사(過去之事)’ 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6자 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Hill) 국무부 차관보는 26일 일본 TV 인터뷰에서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은 과거의 일이라는 것이 미 당국의 판단”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6자 회담에서 다뤄질 다른 의제와 똑같은 수준에서 이 문제를 다뤄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다음달 중에 이뤄질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가 철저히 이뤄지면 시리아 핵 확산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으로 들린다. 미 국무부 숀 매코맥(McCormack) 대변인도 “(북-시리아 핵 협력은) 6자 회담 당사국들에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라는 말로 이번 파문을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도 계속 밀고 나갈 생각인 듯하다. 북한은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 ‘최근 6개월간 테러행위와 관련 없음’을 잘 지키고 있다는 입장을 미국 언론에 흘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 같은 기류는 북한·시리아 핵 협력 문제 때문에 6자 회담이 좌초하지는 않을 것이며, 북한이 앞으로의 핵 검증 및 폐기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올 경우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미국이 최근 핵 신고와 관련한 북한과의 싱가포르 잠정 합의 이후, 국무부 성 김 한국과장의 평양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이번 백악관 발표를 전후로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인식이 다시 한번 미 정치권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게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존 카일(Kyl)을 비롯한 미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14명은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대북 핵 협상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윈스턴 로드(Lord)와 레슬리 겔브(Gelb)는 26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부시 대통령이 외교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북핵 협상을) 진행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미 의회는 북한의 핵 신고가 미진하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 관련 예산 감축 등을 통해 행정부 견제를 강화할 게 분명해 보인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북한과 시리아 간 핵 협력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북 강경파뿐 아니라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많이 양보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고 했다.

/ 워싱턴=이하원 특파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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