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 측이 반대입장을 표출하면서 모든 남북 접촉과 대화의 중단을 공언하는 등 남북 간에 일종의 기싸움 양상이 전개됨에 따라 대북 인도적 지원의 향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쌀.비료 지원으로 대표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지난 10년과 어떻게 다르다는 점을 실물로 보여주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또 남북이 얼음을 깨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소재라는 점 등에서 주목받고 있다.

남한 새정부가 출범한지 한달 이상 지난 6일 현재까지 남북간에 쌀.비료 지원과 관련한 가시적 논의는 없으며 지원 시기 및 규모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달 22일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핵문제와 연관시키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원론적 입장일 뿐, 각론으로 들어가면 단순하지 만은 않아 보인다.

우선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요청이 있으면 논의한다는 입장이어서 누가 먼저 이 문제와 관련한 협상을 제의하느냐부터가 ‘기싸움’의 영역으로 넘어간 듯하다.

실제 북한은 지난 1일 노동신문 ‘논평원 글’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남조선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면서 남한의 쌀.비료 지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기까지 했다.

또 정부는 김하중 통일장관이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것 처럼 과거 정부가 북에 제공한 인도적 지원이 규모(연간 쌀차관 40만~50만t.비료 무상지원 30만~40만t)면에서 인도적 지원 차원을 넘어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호혜적 인도협력’의 기치 아래 북한에 분배의 투명성 제고를 촉구하는 한편 다른 인도적 현안에 대한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김 장관은 지난 달 27일 통일문제연구협의회 간담회 연설문을 통해 “10년 이상 지속된 식량 지원 사업이 더 이상 계속될 수 있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지지와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분배 투명성 문제나 기타 인도적 현안에 대해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처럼 남측은 과거와 한결 달라진 대북 인도적 지원의 원칙을 천명했고 북측은 지난 1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측 대북정책을 사실상 전면 배격하고 나섬에 따라 인도적 지원 논의는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터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중국 등의 지원에 의지하고 남한의 인도적 지원을 아예 포기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분배 모니터링 문제가 합의되면 미국이 북한에 쌀 50만t 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인데다 중국도 8월 올림픽을 앞두고 인접국의 불안을 좌시할 수 없을 것이기에 미.중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남측에는 손을 내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미 중국 지방 정부 차원에서 옥수수 수 만t을 북측에 제공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지원의 시기를 놓칠 경우 국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하는 이도 있다.

북한과의 기싸움 속에 인도적 지원의 시기를 놓쳐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상황에 처할 경우 남북관계가 한동안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될 수 있고 우리 정부에 대한 국내 및 국제사회 여론도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1차 책임은 북한에 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최근 쓴 글에서 “현재 북한은 국제 곡물가 급등에 따른 식량 수입난, 내부 식량 거래 시장에 대한 당국의 단속 강화, 불투명한 국제사회의 지원 등 식량공급 관련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끝까지 버틸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난을 감안, 9일 총선과 18일 한.미 정상회담 등 당면 정치.외교 일정이 마무리되는대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그 계기에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도 자연스럽게 협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연합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