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방명록 파문이 일자 그것으로 「아차」싶던 측에서는 처음에는 도리없이 「유감」을 일단 표명했다. 그러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서 그들은 다시 뒤집기 전술로 나오기 시작했다.

우선 민주당 대변인 성명을 보면 『돌출언행에 대해서는 철저히 가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일단 안전판을 만들어 놓고서 나중에 가서는 다시 『야당이 색깔론적 시각에서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며 딴소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는 색깔론이 아니고 그것을 나무라는 분노의 목소리만 색깔론인가?

근래에 와 이런 類(류)의 일방적 논리가 아스팔트 부대의 유인물뿐 아니라 집권당 사람들의 공식발언에서도 예사롭게 튀어나오고 있어 대항논리의 통일성을 짐작케 한다. 그들은 걸핏하면 「다른 신념」을 향해 「반통일」 「반민족」 「반개혁」이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남을 그런 운동적 용어와 논리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 「통일」 「민족」 「개혁」이라는 특정한 이념적 좌표(색깔)를 대립적으로 선택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쪽에 대한 색깔 시비는 적반하장격이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얄팍한 말장난과 억지는 도처에 범람하고 있다. 『보수·진보의 대립을 정쟁에 악용 말아야…』 『별것 아닌데 정치탓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북 민간교류가 훼손돼선 안돼…』 하는 말들도 정확하고 엄밀한 말은 못 된다. ‘보수·진보의 양극화’는 그 자체가 이미 오늘의 회피할 수 없는 정치주제일 뿐 아니라, 이 문제야말로 대한민국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로서 바라봐야지 『정쟁거리가 돼선 안돼…』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운운도 「통일원칙=만경대 정신」이라고 연상되는 한 결코 「별것 아닌 것」으로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니다.

『이것으로 민간교류가 훼손돼선 안돼…』한 것 역시 본말을 전도할 우려가 있다. 민간교류의 물꼬는 이미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로 무참하게 훼손되고 만 것이지, 그런 일도 없는데 누가 공연히 훼손하게 돼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깨끗하게 규정하고 넘어가지 않고 쓸데없이 군소리를 붙여 『무엇이 잘못됐느냐?』 『이쪽도 잘못이지만 그것을 비판하는 쪽도 잘못…』이라는 식의 언어 유희를 하는 것은 사태를 호도하려는 기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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