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 주민들이 대동강변에서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

"평양, 40년전 침수때와 같은 강수량"
남북정상회담 영향 주목

북한 지역의 수해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이후 북한 곳곳에 강풍을 동반한 집중 호우와 폭우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대부분 지역이 지난해 7월 물난리로 인적, 물적 피해가 커 미처 복구가 제대로 안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평양만 해도 대동강 중상류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대동강 수위가 높아진 결과 빗물이 빠지지 못해 보통강 인근 보통강호텔의 1층이 침수되고 우리의 한강 산책로와 같은 대동강 산책로는 완전히 물에 잠긴 상황이다.

북한 언론매체들도 연일 집중호우 소식을 전하면서 '무더기 비(호우)'로 농경지 침수는 물론 도로, 건물 등이 파괴되거나 무너졌다고 밝히고 도, 시, 군별로 피해 복구를 위한 '지휘부'를 조직해 복구장비 지원과 주민 생활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이 아직 인명피해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북한의 연간 평균 강수량 1천mm의 절반이 넘는 강수량이 며칠새 쏟아진 점 등으로 미뤄 적지 않은 인명피해와 이재민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해가 확산될 경우 자칫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의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주목된다.

◆얼마나 내렸나 = 3∼4일 사이에 200∼300㎜, 지역에 따라 많게는 400∼500㎜가 넘게 내린 곳도 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3일 평양발 기사에서 "7일 자정부터 11일 오후 3시까지 강원도 평강군 623mm, 황해북도 곡산군 579mm의 비가 왔다"고 밝혔다.

특히 5일동안 대동강 중상류지역인 평안남도 덕천 567㎜를 비롯해 북창 555㎜, 맹산 537㎜, 양덕 509㎜, 순천 410㎜, 황해북도 신평 532㎜를 기록했다.

조선중앙TV는 10일 "7∼10일 평양시, 평안남도 산악지방, 함경남도 남부, 황해북도와 강원도에서 200∼400㎜, 평안북도, 함경북도 북부에서 100∼200㎜, 그 밖의 지방에서는 30∼100㎜의 비가 내렸다"며 특히 황해북도 평산과 곡산에 502㎜, 466㎜, 양덕 425㎜, 맹산 317㎜, 강원도 회양 378㎜의 폭우가 쏟아졌다고 밝혔다.

더욱이 지난 8일 하루동안 황해북도 서흥.신계.평성.수안군에서 283∼165㎜, 강원도 법동.문천.세포.천내군에서 182∼168㎜가 내렸다.

양덕군과 회양군은 9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116㎜, 75㎜의 폭우가 쏟아졌고 지난 7일 오전 3시∼6시 사이 황해남도 장연군 91㎜,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 서흥군 110㎜의 비가 퍼부었다.

평양지방도 폭우가 휩쓸었다.

10일 오전 6시부터 11일 오후 3시까지 평양에 250㎜의 호우가 내렸다. 11일 새벽 3∼9시 사이에만 134㎜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상수문국 중앙기상연구소 관계자는 "11일 오후 3시 현재까지 종합한 자료를 분석해보니 1967년 8월 말에 평양시내가 물에 잠겼던 홍수 때와 맞먹는 강수량"이라고 말했다.

1967년 홍수 당시 평양시는 거의 대부분 지역이 침수됐으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었다.

북한은 이외에도 38개의 시, 군에서 100∼200㎜의 비가 내렸다고 전했다.

북한이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언론의 보도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양덕군에 9일 하루 225㎜, 평양에 11일 하루 205㎜, 신계군과 평강군에 10일 하루 각각 183, 157㎜의 '물폭탄'이 쏟아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7∼13일 간 강수량을 보면 양덕군이 538㎜로 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평안북도 구성시 380㎜, 평양 330㎜, 함경남도 함흥시 304㎜, 황해남도 용연군 296㎜, 해주시 240㎜, 신의주 203㎜ 등이다.

◆피해 규모는 = 북한은 피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강수 양상과 강수 지역을 감안하면 큰 재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내년 식량사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언론매체는 인명피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농경지 침수, 도로와 주택, 공공건물의 유실과 파괴 등 물적 피해와 경제활동 피해는 막대함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황해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에서 농경지가 침수되거나 유실, 매몰되고 도로와 철길, 강둑, 살림집, 공공건물 등 많은 대상들이 파괴되거나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이에 앞서 9일엔 "조선의 일부지방들에 내린 무더기비는 해당 지역의 농업부문을 비롯한 인민경제 여러 부문과 인민생활에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고 말했다.

평양방송은 13일 "황해북도와 강원도의 적지않은 시, 군들에서 많은 농경지들이 물에 잠기거나 논밭에 흙과 모래가 쌓여 봄내 여름내 땀흘려 가꿔온 낟알을 제대로 거두어 들일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평양시는 지난 11일 오후 1시에 대동강변의 산책로가 완전히 물에 잠겨 "가로등과 나무의 윗 부분만 보일 뿐"이며 빗물이 수위가 높아진 강으로 빠지지 못해 평천구역 안산동 보통강 기슭에 자리잡은 1급 호텔인 보통강호텔의 1층이 침수되는 등 평양시내 일부가 침수됐다.

지난 8일부터 4일간 평양을 방문했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관계자는 "일정을 마치고 평양에서 순안공항으로 이동하는 중 보니 강이나 농수로가 넘쳐 일부 마을이 잠겨 있었다. 지방은 물론 평양에도 큰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 함경남도, 강원도 지역은 지난해도 수해로 수많은 사상자와 함께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당했던 지역이다.

북한은 지난해 7월10일부터 15일까지 이 지역의 집중 호우로 "수백명이 사망 및 행불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식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인명피해 뿐 아니라 살림집과 공공건물 수만 동이 파손 및 침수되고 수백 개소의 도로, 다리, 제방, 철길 등이 파괴됐으며 농경지 수십만 정보가 침수되거나 매몰, 유실됐다고 밝혔었다.

이때문에 북한은 '아리랑' 공연과 '8.15 남북공동행사' 등 대규모 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사망자 549명, 실종자 295명, 부상자 3천43명에 주택 1만 6천667 동이 피해를 입어 2만8천747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농경지는 모두 2만3천974정보가 침수, 매몰, 유실됐으며 636개소 총 168.2km의 노반 유실과 202개의 다리가 완전 혹은 부분적으로 파괴됐다고 조선신보는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 대북지원 단체는 인명피해가 5만명이 넘고 이재민이 250만명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05년에도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발표 자료에 따르면 평안남도의 집중호우로 193명이 사망 또는 실종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1995년의 수해 때는 150억 달러의 재산피해와 5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듬해 수해는 북한전역의 8개 도, 117개 시.군을 휩쓸어 17억 달러의 손실을 입혀 결국 최악의 경제난을 겪은 '고난의 행군'을 벌여야 했다.

이런 전례와 정황에 비춰 이번 집중호우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북한 경제에 또 다시 깊은 주름살을 안겨줄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지역이 지난해 수해가 채 가시기도 전인 데다 곡창지대와 산업시설들이 밀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으로선 이번 수해로 '먹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밖에 없으며 지난해 핵실험을 기반으로 올해를 경제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의 해로 잡았던 목표도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집중호우에 취약한 것엔 기본적으로 산림의 황폐화와 간석지 개간 등 국토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복구대책은 있나 = 각 도, 시, 군 지역별로 수해 복구를 위한 '지휘부'를 조직해 긴급 복구에 나섰으나, 집중호우가 며칠 더 내릴 것으로 예보되고 있고, 이미 북한 땅이 많은 비에 젖은 상황에서 갈수록 피해규모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피해복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이어지는 수해에다, 수해복구에 필요한 장비나 물자, 자금 등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기도 하다.

복구에 절실한 중장비와 기름이 없다 보니 인력에 의존해 복구할 수 밖에 없고 시간적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하면 이들에 대한 긴급 구호도 어려운 형편에서 여름철 무더위가 겹쳐 수인성 질병 등이 퍼질 위험도 높아진다.

북한은 지난해 수해 당시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명의로 6.15 남측위원회에 필요한 피해복구 물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남측의 수해물자 지원이 이루어졌으나 북측이 핵실험을 단행함에 따라 지원이 중단됐다가 올해 재개되기도 했다.

조선중앙방송은 13일 "국가계획위원회와 건설건재공업성을 비롯해서 여러 성(省)들에서는 내부예비와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피해복구에 필요한 시멘트와 강재, 연유 등 자재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11일 "현재 공화국 정부(북)는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수해 대책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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