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4일 서명한 ‘남북 공동선언’은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또 기존의 남북 당국간 합의서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내용면에서는 기존 합의서에 비해 구체적이지 못하다. 남·북한은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란 3대 통일원칙을 천명했다. 또 1992년에는 남북한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불가침과 교류협력 활성화를 골자로 한 총 25개 조항의 ‘기본합의서’를 발효시켰다. 특히 기본합의서는 제대로 이행만 되면 남북관계가 말 그대로 ‘사실상의 통일상황’까지 발전되는 대장전(대장전)이지만, 8년째 잠자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지금껏 남북관계는 합의서 서명 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경색국면이 계속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이란 새로운 카드로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받으려 했지만,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도 한반도 냉전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경제발전과 선진국 진입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남북한의 이같은 인식이 상당 부분 합치된 데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남북관계를 설정하는 데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인식이 교감을 이뤄,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으며, 이날의 공동선언을 낳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양 정상은 기존의 남북합의서들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선 확실하고 권위있는 보장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합의서는 비록 양측 정상의 위임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특사’(7·4 공동성명)와 총리(기본합의서)가 서명한 것이었다. 때문에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기존의 합의서를 시대변화에 맞게 쉬운 것부터 이행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번 두 정상간의 합의서는, 남북한 문제를 당사자 해결원칙에 입각해 해결하고, 서로가 가진 통일방안까지 협의하도록 결정해, 앞으로 ‘평화공존의 길’을 여는 새로운 이정표란 의미도 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당국자는 “남북의 최고당국자가 그동안 서로 꺼려온 통일방안 논의에 합의했다는 것은 통일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평화롭게 공존·공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합의가 제대로만 실행되면 남북한은 반세기 동안 지속돼온 반목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반자의 관계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번 공동선언이, 구체적 이행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말 그대로 ‘선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또한 ‘자주적 해결’은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 공세의 길을 열어준 것이며, 통일방안 논의는 우리 정부가 고려연방제 안을 부분적으로 인정해 준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날 짜]20000615

[제 목]‘5개항’서명이후;“민족경제 차원” 남북경협 본격화;통일 자주적 해결 - 통일원칙 타결까지 ‘머나먼 길’;통일방안 논의 - 체제인정 공감… ‘국가’부분 이견;이산가족·장기수 - 남이산가족·북장기수 주고받아;경제 협력 - 대북투자 SOC건설 현안 떠올라;김정일 서울답방 - 경협내용등 충족돼야 성사될듯;

[본 문]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북측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4일 5개항으로 이뤄진 남북공동선언에 합의, 서명했다. 이 내용은 실천에 따라선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어 주목된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은 1972년 남북한이 공동으로 채택한 7·4 남북공동성명에 근거한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기초가 된 4·8합의서에서도 그대로 인용됐다.

이는 남북한 문제를 외세(외세)의 간섭없이 당사자끼리 직접 해결한다는 대원칙이다. 남측이 남북한 관계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온 ‘당사자 해결’ 원칙과 북측이 주장해온 ‘자주·민족대단결’ 원칙을 절충한 것이다. 이 원칙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이번에도 합의문이 나온다면 충분히 예상됐던 것(박두복 박두복 외교안보연구원교수)이다. 통일연구원 전현준(전현준) 연구위원은 “북한의 ‘자주’ 개념에는 주한미군 철수가 항상 포함돼 왔는데, 그 부분을 언급 않고 합의한 것은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협상의 전도(전도)를 반드시 낙관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복병(복병)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측의 ‘당사자 해결’ 원칙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북한측은 ‘자주’라는 원칙 아래 반(반)외세를 주장해왔다.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이 합의를 근거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할 때엔 남북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측이 전제조건 없이 당사자 해결 의지를 보일 것이냐에 이 조항의 사문화(사문화) 여부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통일방안 논의

북측이 말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란 ‘1국가 2체제 2정부’를 상정하지만, 중앙정부의 기능보다 지역정부(남한 및 북한)의 권한을 대폭 늘린 것을 말한다. 즉 국방·외교 권한도 지역정부가 갖는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달성하기 위해 남·북한의 현실을 사실상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 또는 ‘느슨한 연방제’는 1991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됐다. 북한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에 응한 것도 이같은 방안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의 남북연합 단계는 ‘2국가 2체제 2정부’라는 지금의 남북 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자유 왕래와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북 정상회의’를 정례화하고 ‘남북 각료회의’, ‘연합국회’ 등의 제도적 장치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유엔에 2개 국가로 가입했다.

두 가지 방안은 지금의 남북관계를 인정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점이 통일논의의 출발이다.

그러나 낮은 단계라 하더라도 연방제는 1국가를, 우리의 남북연합은 2국가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국가와 ‘지방정부에 많은 권한이 있는 2정부’는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국가는 단순히 권한만으로 설명할 수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통일방안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이산가족 상봉은 남측의 희망사항이고,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북측의 요구사항이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이 두 달 후 시점을 못박아 합의한 만큼 성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 최고위급 회담을 거쳐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성사된 전례도 있다.

그러나 백진현(백진현) 서울대 교수는 “이산가족 전원을 상대로 한 서신교환 등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1회성 이벤트가 추진되는 것은 아쉽다”고 평가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측이 요구해온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패키지’로 묶인 반면, 마찬가지 인도적 문제로 우리측 요구사항에 해당하는 국군 포로, 납북 어부 송환 등은 합의에서 제외됐다.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푼다’는 표현에 따라 이 부분도 앞으로 논의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일단 북측이 요구한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이 우선적으로 실시되게 됐다. 현재 북한으로의 송환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는 5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창균기자 ck-kim@chosun.com

◆경제 협력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고 합의했다.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은 북한의 붕괴된 경제를 재건하는 문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 문제가 단독 항목이 되지 않고, 다른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다방면의 교류중의 하나로 취급된 것도 북측의 자존심과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이 경제협력에 합의함에 따라 우선적으로 남측 기업의 대북 진출, 북측 사회간접자본 건설 지원 등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남북간 경협의 선결과제로 재경부 관계자들은 ‘남북 투자보장각서’와 ‘이중과세 방지각서’ 체결을 꼽고있다. 투자보장협정은 ▲북한 진출 기업의 국내 송금 보장 ▲북한 진출 기업의 재산 보호 ▲남측 기업에 대한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등으로 구성된다.

자금 확보도 중요한 변수. 정부는 대외경제협력기금(7000억원), 국제협력단 자금(400억원) 등의 남북협력기금을 1조원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북측의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국제협력을 얻기 현재 미국에 의해 ‘테러 지원국가’로 분류된 북한이 빨리 국제기구에서 정상적인 회원 대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준기자 junlee@chosun.com

◆당국간 접촉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울 답방

‘빠른 시일내에’ 당국간 대화를 갖기로 한 이상, 빠르면 이달안으로 차관급 내지 장관급 수준의 실무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당국자간의 대화는 1991년말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진행된 것과 비슷하게 남북의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번갈아가며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해 상당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연내 성사가 기대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동선언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제1항(자주원칙)과 제2항(통일방안 협의)에 대해 남과 북의 정치협상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경협 분야에서도 남측이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는 등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되고 나서야 서울 답방이 성사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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