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철도 연결엔 긍정적..주한미군 철수 명시엔 곤혹

정부는 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공동선언이 남북대화 재개 등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선언의 이면에 대한 보다 정밀한 분석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공동선언이 주한미군 철수와 ABM(탄도탄요격미사일) 협정 지지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북한이 그동안 해오던 얘기를 반복한 것일 뿐”이라면서도 앞으로 미·북대화 등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공동선언에 주한미군 철수 표현이 들어간 것과 관련, 러시아 정부측이 “ ‘북한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것은 동감·동조의 의미가 아니며, 북한이 그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얘기를 해왔다”고 소개해, 가급적 그 파장을 축소하려 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러 정상회담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는, 러시아의 남북대화 지지 북한의 국제기구 및 미·일과의 관계개선 지지 시베리아 철도연결 사업의 본격화 등 크게 3가지를 들었다. 시베리아 철도와 남북간 종단철도가 연결되려면 이를 위해서라도 남북간 대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오는 9월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이 방북, 남북대화 재개를 강조하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북·러간 일련의 협정들과 무기구매 부분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 정보가 없다”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두 정상 간에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것은 없었으나 러시아가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입장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허용범 기자 heo@chosun.com

한나라당, "북에 속은 거냐, 국민 속인거냐"

한나라당은 5일 러·북 모스크바 선언에 미군철수가 포함된 것과 관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주한미군의 존재를 용인했다’는 김대중 대통령 발언을 문제삼으면서 “속은 거냐, 속인 거냐”고 물었다.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선언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공개적으로 명기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통령 및 정부의 주장과 상당부분 상치된다”며 “대통령이 상황을 국민에게 그릇되게 설명했거나 아니면 북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황을 잘못 판단했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인 ‘북의 변화’는 허구였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최병렬 부총재도 “주한미군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심리적 토대가 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모스크바 선언을 본질적인 상황 변화로 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배 사무총장은 “김 위원장이 이번 방러 기간 중 군수물자 공장만 다녔다는 사실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자민련도 유운영 부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북한의 강력한 요청으로 포함됐다는 것은 북한이 아직도 대남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최구식기자 qs1234@chosun.com
/ 이철민기자 chulm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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