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그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미 중국을 방문한 마당에, 그것도 서울 답방을 앞두고 러시아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국외자(국외자)로 전락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한 러시아 외무부 고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이전에 한국 답방이 이뤄질 경우, 양국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북한측에 여러 차례 보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초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은 4월로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북한측이 방러 대가로 탱크·전투기·대공장비 등 무기와 원유 공급을 요구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러시아가 경제사정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북한 요구가 지나치다고 설명했으나, 당시 북한측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러시아측의 설명이다.

현재 러시아는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불량국가로 간주하더라도 ‘북한 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중국과의 급속한 관계 회복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문제를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MD의 명분이 되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은 러시아의 중요한 외교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는 김정일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를 적극 희망하고 있다. 이는 정부내 실력자인 니콜라이 악쇼넨코(Nikolai Aksenenko) 철도부 장관의 적극적 로비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악쇼넨코 장관은 “시베리아 철도(TSR)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물류의 중심지로 만들어 러시아를 부흥시키자”며, 시베리아 철도와 한반도 연결 문제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철도부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 모스크바에 온다면, 이 보다 더 좋은 광고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같은 러시아의 희망은 김정일이 26일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사실이라면 현실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 관리들은 북한의 방러 대가 요구 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단지 북한의 요구가 어느 정도는 수용됐기 때문에 이번 방러가 성사된 것 아니냐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러·북 정상회담에서는 시베리아 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 문제와 북한의 러시아제 공격무기 도입이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스크바=황성준특파원 sjh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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