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광인입니다.

북한과 통일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방식 가운데 선군정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독특한 통치방식으로 선군정치 외에 인덕정치(仁德政治), 광폭정치(廣幅政治), 음악정치(音樂政治)에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정치(科學技術政治)라는 것까지 내세우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그들의 담론으로 돌릴 수 있고,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선전용 팜플렛'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데 그 나마 비교적 현실에 맥이 닿아있고 김 위원장의 속내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선군정치가 아닌가 합니다.

북한은 이를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군사(군대)를 앞세우고 군사(군대)에 의지해 혁명과 건설을 추진해 나간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김 위원장 자신도 58회 생일을 맞은 지난해 2월 16일 "지금 우리는 마치와 낫 우(위)에 총대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 당의 독창적인 군사중시사상, 선군정치노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매우 솔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마치와 낫이 상징하는 것은 노동자·농민, 즉 무산계급으로 이른바 혁명의 주력군입니다. 그런데 마치와 낫 위에 총대가 있다는 것은 노동계급 위에 군대가 있다는 뜻이고 이는 혁명과 건설의 제1선에 군대가 서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왜 북한은 노동계급보다 군사를 앞세우는 선군정치를 실시하는가. 이는 오늘날 북한이 처한 주객관적인 상황, 그로부터 도출된 김정일 위원장의 정세판단과 현실인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이를 그의 통치철학(정치철학)과 결부시키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총대철학이고 선군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이 처한 주객관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소련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 붕괴로 상징되는 이른바 '사회주의 대지진', 그로부터 야기된 체제붕괴에 대한 우려와 위구. 그리고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김일성 사후의 급격한 경제사정 악화와 사회통제기제의 이완 내지 무력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요.

이런 위기국면에서 김 위원장이 난국 극복을 위해 믿고 의지하며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북한은 그것이 총(군대)이었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간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총"이라며 자신이 믿는 것은 오직 총뿐이라고 서슴없이 말한 바 있습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이런 생각을 부연해 "정권은 총대에서 나오며 총대에 의거하여 유지된다. 혁명과 건설의 성패, 사회주의의 운명은 총대에 의해 좌우되며 평화와 나라의 안전도 총대에 의하여 담보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총대 우(위)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가 있다. 총대가 강해야 민족이 부흥하고 나라도 강성해진다. 총대를 떠난 자주성이란 있을 수 없고 총대에 녹이 슬면 인민이 노예가 된다"면서 이것이 김 위원장의 총대철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김 위원장의 총대철학은 구체적인 현실로 표출되어 선군정치의 이름아래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98년 9월 헌법을 개정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출범시키면서 국방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구조를 탄생시킨 것, 김 위원장이 시급한 민생현장을 도외시하고 군부대 일변도의 현지지도 행태를 보여준 것 등은 그의 총대철학과 궤를 같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주민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가운데서도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1호(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1호로 주장) 개발에 열중하며 군사력 강화에 역량을 쏟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민생활로 돌아와 보면 군부가 주요 산업현장을 직접 장악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일선에 나선 것이라든가, 사회적으로 이른바 '총대가정'이 양산되는 현실 등도 총대철학·선군정치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98년 말 무렵부터 군인들이 종업원 500명 정도의 2급 이상 공장·기업소를 장악하고 직접 운영을 담당하기 시작한 것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린 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공장의 설비와 부품을 뜯어 내다팔아 먹을 것과 바꾸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자 군부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나섰고, 나중에는 아예 공장 운영까지 맡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결코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총대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 역시 선군정치의 편린을 엿보게 하는 북한 특유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안의 형제나 남매, 또는 부자가 모두 군에 입대해 복무하고 있는 가정,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가정을 북한은 '총대가정'이라고 부르며 선군정치의 결실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평북 동림군의 최일희 여성의 가정은 아들·딸 10남매와 사위, 손자까지 모두 16명이 군에 입대했고, 평북 용천군의 신순애 여성의 가정은 전쟁노병이자 영예군인(상이군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6형제가 모두 군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후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맏아들 김승김씨가 입대하는 여동생과 함께 재입대하여 지금은 7남매 모두가 군관(장교)으로 복무하고 있는데 이들 7남매의 이름 가운데 마지막 글자를 죽 나열하면 '김정일결사옹위'가 된다고 합니다.

9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어머니대회에는 5부자, 5형제 이상되는 총대가정 120여 가구의 어머니가 참석해 이목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총대가정이라고 하면 누가 뭐래도 군관 엄복순(여) 가정이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습니다. 지난해 2월 19일자 노동신문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들 가족을 접견하고 촬영한 기념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린 적이 있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이 여성해안포중대의 포병 손경실과 찍은 기념사진


김 위원장은 이틀 전인 2월 17일 이들 집안의 가장인 군관 손문규와 그의 아내 엄복순, 과거 어머니(엄복순)가 복무했던 동해안의 어느 여성해안포중대에 근무하고 있는 두 딸 손경실·손경순을 불러 오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가 이번에 동무들을 만나보고 싶어 한 것은 동무들이 그 무슨 훌륭한 공적을 세웠거나 인물이 잘 나서가 아니라 혁명의 대를 꿋꿋이 이어 나가도록 자식을 잘 키워 그들 모두를 조국보위초소에 세운 것이 대견하고 기특해서"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에 앞서 95년 2월 김 위원장은 동해안의 여성해안포중대를 시찰했을 때 처음 이들 자매와 만났고 이때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97년 11월 김 위원장이 이 부대를 다시 방문해 이들 자매와 만남으로써 전날의 약속을 지켰다고 북한 선전매체들은 크게 보도했습니다. 인민군 소속의 4·25예술영화촬영소에서는 이를 소재로 경희극 '약속'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놓았으며 김 위원장은 경희극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엄복순 가정의 이야기는 나중에 '우리 집은 군인가정'이라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보급될 정도로 북한에서는 유명한 이야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호가에 아들이 서고 어머니가 섰던 초소 딸이 지키네"라는 한 구절은 이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종자(種子)가 무엇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이 스스로 고백했듯이 선군정치는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최후의 카드였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가장 완성된 정치방식, 이상적인 정치"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더욱이 항구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군대의 사명은 국방에 있고, 그들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는 해결사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물리적 폭력을 가진 군대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비상시에 한하는 것이고, 오래가면 결코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의 선군정치도 일단은 한시적이고 과도적인 한 단계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선군정치의 종착점은 어느 쪽이 됐든 간에 북한 체제의 운명을 가르는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김광인 기자 href=mailto:kki@chosun.com>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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