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4일, 미 의회가 의회 관계자를 직접 서울로 보내 지난 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초청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으나, 황씨의 방미에 대해서는 신변안전 문제를 들어 여전히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황씨를 보호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이날 “황씨의 방미문제는 그 특수성을 고려하여 한·미 정부차원의 신변안전 보장 등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준비기간이 필요하며, 앞으로 한·미 양 정부 간 협의할 사항”이라고 밝혀, 오는 20일을 전후한 시기에 초청된 이번 황씨의 방미를 사실상 허락하지 않을 뜻임을 밝혔다.

청와대의 한 고위 당국자도 “현재의 여건에서는 신변안전 때문에 허락하기 어렵다”면서 “황씨의 방미가 이뤄지려면 사전에 신변안전에 대한 협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미 의회의 공식 초청장을 전달받은 황씨 자신은 “그쪽에서 초청했으니 반드시 가겠다”는 의사를 거듭 국정원측에 밝혔으나,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황씨에게 미국 방문 시기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이후로 연기토록 하는 방안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미국의 헨리 하이드(Henry Hyde) 하원 국제관계 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Christopher Cox) 하원 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시 헬름스(Jesse Helms)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와 디펜스 포럼의 수잔 솔티(Suzanne Scholte) 회장은 헬름스 의원의 짐 도란(Jim Doran) 보좌관 등 의회관계자 3명을 1일 서울에 보내 황씨가 미국 의회를 방문, 연설과 증언을 해 달라는 각각의 초청장을 황씨에게 직접 전달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 정부의 주선 거부로 국정원을 통해 초청장을 황씨에게 간접 전달했다.

지난달 28일과 29일자로 된 이들 초청장들에는 황씨의 신변안전문제와 관련, “미국 정부의 관계기관과 협의,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초청장은 이어 “북한으로부터 탈출한 최고위 인사인 당신의 연설과 증언은 미국 정부가 북한정권이 지역평화와 안전에 제기하는 도전과 딜레마들을 대처해 나가는 데 매우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라면서 오는 20일부터 시작하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출석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국정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황씨의 방미 초청장은 미 의회의 공식 초청장이 아니라,헬름스, 콕스, 하이드 의원 등이 보낸 개인 명의의 초청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 의회의 초청장을 가지고 한국에 온 척 다운스(Chuck Downs) 전 미 공화당 정책위 보좌관은 이날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황씨 초청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미 의회 지도부의 공식 논의를 거쳐 작성된 공식 초청”이라고 밝히고 “황씨를 면담하기 위해 6일까지 국정원 관계자와 접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허용범기자 yongbom_heo@chosun.com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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