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

이제 정부는 탈북자 문제를 더이상 적당히 뭉개고 있어서는 안된다.

길수군 가족의 북경 농성은 한국 안착으로 귀결됐지만, 이번 사건은 앞으로 탈북자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생존의 막다른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수만 내지 수십만의 탈북자들은 스스로 다양한 자구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언제든지 국제적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분명히 입증했다.

탈북자 문제를 보는 국제 언론의 시각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인권상황에 관한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해 ‘증거가 있느냐’며 회의적 시선을 보내던 외국 유력 언론들은 직접 취재에 나서기 시작했고, 탈북자들의 증언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이런 변화하고 있는 상황은 문제를 정면에서 직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는 순수한 인권차원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난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중국의 탈북자들이 쉽게 한국으로 올 수 있다면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북한 정권은 내부의 통제를 더욱 죄면서 개혁 개방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려고 하지 않겠는가.

북한으로부터의 대량 난민 발생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정책에 어떤 수정을 가할 것인가. 게다가 한국내의 여론은 과연 수십만 탈북자를 기꺼이 수용할 태세가 돼 있는가. 또 북한 체제의 안정화를 단기적 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비협조는 오히려 우리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계속 엉거주춤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좋은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다. 정부의 의지 부족은 일선 대사관 직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에게 “세금 한푼 내지 않고는” “왜 귀찮게 하느냐”는 식의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상황 논리와 전략적 고려에 따른 탈북자 문제의 현상유지 정책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렵게 됐다.

과거 서독의 경우, 우리의 햇볕정책이 모델로 삼은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동독주민=서독국민”이라는 원칙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으며 현실 정책에서도 이를 충실히 수행했다. 서독 헌법(기본법)은 “1937년 12월31일 현재 독일제국 영토하의 독일 국적 소유자와 그 배우자 및 비속은 독일 국적을 갖는다”고 규정, 동독 지역은 물론 동구권의 독일인들까지 서독 국적을 갖는 것으로 인정했다.

브란트 총리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하자 야당은 이것이 헌법상의 동독주민에 대한 보호의무를 포기한 것이라면서 위헌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조약은 동독 정부가 국적에 관한 법률을 어떻게 다루든지 관계없이 서독은 동독의 모든 국민에게 기본법 규정에 따라 서독 국민과 동일한 독일인으로 취급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서독 법정은 나아가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도와주고 대가를 받는 상업적 또는 기업적 활동에 대해서도 사실상 법적 보장을 해 주었다.

우리 헌법 역시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영토조항)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소극적 대응은 민족 도덕성은 물론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분명한 원칙을 천명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민간단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나갈 수 있다.

김정일정권을 향한 포용정책에 정부가 쏟아붓고 있는 불굴의 의지와 막대한 자원의 몇백분의 1만 탈북자 문제에 할애해도, ‘햇볕의 그늘’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햇볕정책의 도덕성을 높이는 첩경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장 h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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