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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수군 일기·그림·가족 편지 단독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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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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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수군의 외할머니인 김춘옥씨가 작년 5월 친필로 쓴 '김대중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

“우리 가족이 간다 해서 조국 통일에 큰 지장은 없을 것입니다. 제발 우리 가족을 살려주십시오.”

지난달 30일 4년여의 탈북·도피 생활 끝에 서울에 온 ‘길수 가족’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의 한 구절이다. 길수 가족의 한국행을 주도했던 길수군 외할머니 김춘옥(67)씨는 ‘대한민국에 계시는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에서 이렇게 애원했다.

본지는 3일, 작년 초부터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사무실 농성 직전까지 장길수(17)군이 쓴 미공개 일기와 그림 10여점, 길수군 가족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보내기 위해 쓴 편지 등을 단독 입수했다.

◆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97년 3월 길수 가족 중 가장 먼저 탈북에 성공했던 길수군의 외할머니 김춘옥씨는 작년 5월 5일에 쓴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에서 “살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했다.

그는 편지지 4장 분량의 서한에서 “내 한 몸은 죽어도 좋으니 손자·손녀들의 앞날을 봐서라도 제발 우리 가족을 살려주십시오”라며 “한국 땅에 가기만 하면 정부에 의탁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일하여 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김씨는 또 기구한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증명서 없이 열차에 탔다가 교화소에 끌려가 정신병에 걸린’ 큰아들과, ‘성분이 나빠 대학에 갈 수 없어 신경쇠약에 걸려 죽은’ 작은아들, ‘중국에서 장사 온 남자들과 말했다는 죄로 얼굴이 퉁퉁 붓도록 매를 맞고 죽은’ 셋째 딸, ‘북한으로 강제소환돼 1년이 지나도록 소식조차 모르는’ 둘째 딸의 사연 등….

감내하기 힘들었던 비극적인 가족사를 소개하면서, 김씨는 “김 대통령님께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오직 한민족으로 태어난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라는 말로 편지를 끝맺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길수군의 외삼촌 정대한(28)씨는 작년 8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세상에 더는 없어야 할 조선땅, 세계에 두번 다시 재존하지 않기를 염원하며 그곳 조선땅을 지구 위의 가장 큰 역사박물관으로 세세년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고 비꼬았다. 그는 “(북한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으로 여기며 살던 저에게 중국에서의 3년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북한의 밤'과 환하게 빛나는 '중국의 밤'

정씨는 “강냉이 한줌을 줘도 기뻐서 ‘장군님 만세’를 외치고 ‘내 나라 제일 좋아’라고 삼창을 부르는 민족은 다시 존재할 것 같지 않습니다”라며 “어찌해서 장군님이 있는 곳은 가끔씩 사람고기를 양식으로 먹지 않으면 안되느냐”고 반문했다. 정씨는 “죽어서 영혼이 된 후면 모를까 살아서는 당신의 그 땅에 들어서고 싶질 않습니다”라고 절규했다.


◇ 장길수,한길 형제가 그린 미공개 그림들. 역전 대합실에서 빵을 훔쳐먹다가 군인에게 매를 맞고 있는 사람.

◆ 길수 일기 =작년 초부터 시작된 길수군의 미공개 일기는 베이징으로의 탈출이 가까워지면서 부쩍 가족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UNHCR로 탈출하기 한 달여 전 일기에서 길수는 “눈물이 자꾸 나와 겨우 참았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려고 하는데 희생 없이 될 수 없다”(5월 23일), “요즘은 밤잠을 자나 낮잠을 자나 계속 꿈을 꾸는 것 같다. 어머니를 꿈 속에서 만났을 때는 어찌나 기쁜지, 깨어나면 그냥 허전하다…”(5월 29일)고 애닯은 심정을 적었다.

길수는 또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삼촌을 떠올리며 “삼촌도 중국이나 한국,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나에게 믿음직한 삼촌들이었을 것이다. 우리 삼촌을 죄인으로 만든 그 사회를 저주할 뿐이다”(5월 28일)고 한탄했다.

일기는 지난 5월 29일로 끊겼다. 탈출을 결행키로 한 6월이 다가오면서 불안해진 길수가 더이상 펜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길수 구명운동본부’의 문국한(49) 사무국장은 전했다.
/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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