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중국 방문과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계기로 북한도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왜 중국의 경험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있어 소중한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치적으로는 북한이 현 집권 엘리트의 주도로 개혁을 추진할 경우, 기존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을 수용한 중국식 개혁·개방 프로그램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즉 사회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로까지 이어졌던 구소련이나 동유럽의 경험은 답습하지 않고 개혁·개방과 체제전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북한은 경제 성장을 위한 자금 축적의 원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공업 발전을 위한 농업과 경공업의 희생이라는 기본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농업과 경공업의 침체로 인한 자금 축적 구조의 마비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에 있어서는 두 나라가 완전히 달랐다. 중국의 경우는 개혁·개방을 동시에 진행한 데 비해, 북한의 경우는 나진·선봉지대에 자유경제 무역지대를 설치하는 조치만 취해 왔다. 즉, 농업과 경공업이라는 본래의 자금 축적원에 대한 개혁 없이 새로운 자금 축적원으로서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려는 조치만을 추진하여 온 것이다.

축적 메커니즘의 마비에 대한 이러한 상이한 처방은 두 나라에 있어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즉 중국은 지난 20여년간의 경제 개혁·개방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데 비해, 북한은 90년대 들어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따라서 북한도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선과는 다른 새로운 처방을 모색해야만 했고, 이러한 사정이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중국 방문, 중국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우호적 평가 등으로 이어졌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한 경험에서 어떠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국토, 인구 등에서 중국과 북한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중국식의 개혁·개방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상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본철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의 개혁·개방에 대한 논의를 북한에 적용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농업체제 개혁의 경우 북한 당국이 농민들의 근로의욕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협동농장체제를 개혁해 농가에 경영을 위탁하는 체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기업구조 개혁의 기본과제는 한마디로 시장가격의 확대와 계획가격의 축소라고 할 수 있다. 시장가격은 그 조절 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부단한 확대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도가 높아지게 만들고, 반대로 경제 운용에 대한 계획가격의 영향은 그 조절 범위와 상대적 규모의 점진적 축소에 따라 갈수록 그 중요성이 감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정구조의 개혁을 위해서는 기업의 자주권 확대와 함께 기업에 대한 지금과 같은 직접통제를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재정체제로 하루 빨리 바꾸어야 할 것이다.

금융개혁에서는 국가 단일은행이 중앙은행 업무와 상업은행 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지금의 일원적 은행제도를 중앙은행 기능과 상업은행 기능을 분리하는 이원적 은행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만으로 북한 경제가 회생할 수 있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같은 제도적 변화가 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즉 외국 자본의 유치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외국 기업의 적극적인 유치를 위해 당·정·군이 일치된 개혁·개방의지를 표명하고, 정치·외교적인 안정과 민족자본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하는 등의 조치들도 취해야 할 것이다.

/ 박정동 KDI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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