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평양에서 개최될 예정인 남한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아이러니일 것이다. 만약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미래의 역사가들은 선거 전략에 의해 분단된 반도가 통일되고, 그 결과 6·25 전쟁이 종식된 해로 회담이 열린 2000년을 회고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자신의 새천년민주당이 국회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임기 후반 레임덕 현상이 가중될 것이라는 어두운 가능성에 직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김 대통령은 전통적으로 비타협적인 파트너였던 북한의 김정일로부터 역사적 정상회담에 대한 동의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양 정상회담에는 경제협력, 긴장완화를 위한 평화방안, 이산가족 상봉 등에 대한 논의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러나 정상회담의 내용보다는 김 대통령이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발표한 시점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총선 투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뤄져 의혹을 샀지만,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공격을 무디게 했다. 물론 야당은 반칙이라고 비난했다. 가장 목청을 높여 비판한 사람은 김 대통령의 정적인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였다. 그는 김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뒷구멍에서 북한에 상당한 양보를 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전체 273석 중 133석을 확보, 민주당(115석)에 승리를 거뒀다. 김 대통령이 군소 야당과 공조를 취하지 않는 한 이 총재는 정부 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협조적인 정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김 대통령은 이 총재에게 남북 정상회담 등 국정 전반에 대한 협의를 제안했다. 최근 몇 달 동안 두 사람 간의 균열은 상당히 심했다. 이 총재는 지난 97년 대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대권을 놓쳤다. 이후 두 사람은 여러 가지 국가 정책에서 이견을 드러냈고, 직접대화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총재는 호전적 이미지보다는 대국적 정치가다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은 반면 노벨평화상 획득과 자신이 역사에서 차지할 위치를 다지기 위해 남·북한 간 관계 회복을 주재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래서 화해와 단결의 제스처로 이 총재와 김 대통령은 4월 25일 만나 성공적 남북회담을 보장하기 위한 협력에 동의했다. 정상회담이 북한 비즈니스에 따르는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서, 현대와 삼성 등 대기업들은 대북사업을 더 확장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표명했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미비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확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두 정치적 라이벌의 화해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한반도 드라마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인들이 무대 중앙에 나설 수 있도록, 클린턴 행정부는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해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클린턴 대통령을 스타로 부각시키는 또 하나의 기회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까지 주도적인 위치에서 북한과의 협상을 이끌어온 것은 미국이었다. 6월의 평양 정상회담은 미국이 능동적인,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지원하는 역할에 적응할 기회를 제공하리라 본다.

김 대통령의 4월 18일 연설도 이러한 의향을 반영했다. “정상회담 합의가 외부의 영향력 없이 이뤄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 한국 언론인은 외교적 사탕발림을 이렇게 희화화했다. “나는 클린턴 대통령이 샴페인을 터뜨리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미국 외교의 승리라고 주장하지 않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

물론 미국은 이 지역 안보에 핵심적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 비무장지대 부근의 미 병력 주둔뿐만 아니라 핵 억지력으로서 미국의 역할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미국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김 대통령이 여유를 갖고 궁극적으로 통일에 이르는 길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 시점에서 승리를 선언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다.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도 계획이 뒤틀릴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잡음과 분노가 뒤섞인 이 드라마는 앞으로 일어날 훌륭한 사건의 전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정리=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 맬컴 월럽

1954년 예일대 졸업

1969~1973년 미 와이오밍 주 하원 의원

1976~1994년 미 상원 의원

1973~1977년 미 와이오밍 주(주) 상원 의원

현재 헤리티지 재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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