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가 ‘조선왕조실록’을 국역해 펴낸 ‘리조실록’.

북한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가 펴낸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이다. 민족고전연구소는 75년부터 국역작업에 착수해 91년 최종 번역작업을 마치고 총 400권으로 묶어 출간했다.

원본은 50년 7월 인민군이 잠시 서울을 점령한 틈을 타 북으로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6·25 당시 김일성이 직접 왕조실록 「구출작전」을 지휘했으며 전쟁 전기간 최고사령부에 보관돼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국역작업을 주도한 사람은 일찍이 위당(爲堂) 정인보 선생이 『우리 무리에 뛰어난 두 선비가 있다』며 첫 번째로 꼽았던 어문학자 대산(袋山) 홍기문(1904∼1992)이었다. 대산은 역사소설 「임꺽정」의 저자이자 북한 초대내각 부수상을 지냈던 벽초 홍명희의 아들로 1948년 평양에서 열린 4월 연석회의에 참석한 후 아버지와 함께 평양에 눌러 앉았다.

그가 조선왕조실록 국역과제를 맡은 것은 일흔 고개를 바라보던 70년 10월. 조선 태조부터 순종황제까지 27대 519년 간의 역사기록을 담은 1763권(미완성본인 ‘광해군일기’ 태백산본 제외)의 왕조실록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대산은 자신이 직접 방대한 양의 번역사업을 수행하면서 번역원들에게 매일 강의도 하고 번역문을 꼼꼼히 교열검토하면서 81년 11월 기본적으로 번역작업을 마무리하는 불꽃 같은 열정과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책이 나온 이듬해 사망했다.

남한에서는 1968년 번역에 착수, 26년 만인 1993년 말 모두 413책으로 완역했다. 남북 「조선왕조실록」 국역본은 몇 가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리조실록」이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원문의 뜻을 그대로 살려 쉬운 말로 번역한 것이다. 일례로 조정에 올리는 보고서들인 장계(狀啓), 치계(馳啓)를 남한에서는 「장계하기를」, 「치계하기를」로 번역한 데 반해 북한은 다같이 「보고하기를」로 풀어놓고 있다.

남한이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유일하게 중초본(中草本)이 남아 있는 「광해군일기」를 중초본을 토대로 번역했는데 북한은 최종본인 정본을 근거로 번역한 점도 눈에 띈다. 남한은 일제 식민시대에 편찬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제외했으나 북한은 이 두 실록을 포함시키고 있는 점도 남북한 간의 차이점이다.

국역대본으로 남한은 태백산(太白山) 사고를, 북한은 적상산(赤裳山) 사고를 이용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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