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장길수(16)군이 탈북후 최근까지 쓴 일기중 일부가 27일 추가 공개됐다.

장군이 지난 99년 1월 탈북 직후부터 올해초까지 쓴 일기는 국내에서 장군 일가를 도와온 `길수가족 구명운동본부'가 보관하던중 작년 초까지 쓴 내용이 이미 `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刊)를 통해 공개됐으며 이번 장군 일가의 난민 지위 신청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쓴 내용 일부가 추가 공개됐다.

구명운동본부측은 책 출간 이후 장군이 쓴 일기를 다시 책으로 묶어 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군의 일기장에는 탈북후 중국 시장통으로 `출근'하며 구걸을 해야 했던 이른바 `꽃제비' 생활과 탈북자들을 단속하는 공안에 대한 두려움, 지난해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인해 탈북자들이 오히려 곤란해지는건 아닌가 하는 의문 등이 기록돼있다.

다음은 그의 주요 일기 내용.

▲2000년 3월15일 = 오늘도 시장으로 출근을 했다. 어제도 돈을 못 벌고 그저 허탕을 쳤으니 오늘은 돈을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꽉 들어찼다. 그래서 00이와 함께 시장을 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한국 사람을 찾는 데만 쏠렸다.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오후 2시까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다리는 삶아논 개 대가리처럼 푸뜰푸뜰거리기만 했다.

▲2000년 4월9일 = 우리가 쓰고 그린 글과 그림들을 책으로 출판해서 태양절(4월15일=김일성 생일)날에 팔리게 하여 한국 조선(북한) 중국을 들썩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 책에는 연변이란 말이 많이 들어가는데 경찰들이 대수색을 할 것이므로 우리 신변이 위험해질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쓴 글과 그림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는 들뜬 마음은 걷잡을 수 없다.

▲2000년 4월17일 = 저녁에 큰 어머니가 도착했다. 한국에서 그 책(`눈물로 그린 무지개')이 많이 팔리고 있는가를 물어 보았다. 팔리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북한의 김정일과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 만나기 때문에 시끄러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두루두루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큰어머니는 지금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여기가 더 안전할 테니까.

▲2000년 11월1일 = 시장통을 헤매다 집에 들어서니 식구들이 막 달려나와 공안이 왔다 갔다면서 옷을 다 주워 입히면서 바로 떠나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 갑자기 밖에서 소리가 들려 식구들이 모두 옷장이고 뭐고 구석구석 들어가 30분 동안 숨어 있었다. 겁에 질려 이모부네 식구 모두가 안달이다.

▲2000년 11월4일 = 밀수배(밀항선)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너무나도 힘들 것 같았고 우리 같은 탈북자는 그런 배를 태워주지 않을 것 같았다. 탈북자를 데려가다 잡히기라도 하면 위험성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또 배를 타고 가다가 감기라도 걸려 넉 달 이내에 낫지 않으면 무조건 바닷물에 처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다 고기들의 맛있는 밥이 되고 말겠지. 무섭다. 살려고 한국으로 가다가 채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서 없어지고 말겠다. 하긴 자유를 찾아가는 길에서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결의했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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