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수뇌부 골프 파문이 우리 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된 20일 저녁 군을 대표하는 장군들이 합참의장의 지시로 줄줄이 신문사를 찾아왔다. 다른 언론사에도 장군들이 동원됐다. 그들 말대로 『가십성 기사』를 빼기 위해 군 수뇌부들이 대거 동원되는 문화…. 바로 이것이 우리 군의 현주소다. 엄격한 계급사회라도 계급에 걸맞은 임무와 처신이 있는 법이다. 1971년 베트남전과 관련된 메가톤급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가 뉴욕 타임스에 보도됐을 때도 미 군부는 장군들을 신문사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일 북한 선박의 영해 침범 당시 군 수뇌부가 골프를 한 데서 비롯된다. 군 관계자들은 『언론들이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통에 지휘계통에 문제가 생기고 사기가 저하됐다』고 주장한다.

사실 비판의 초점은 토요일 오후 골프를 한 것이 아니라 북한 선박들의 잇따른 침범에 군이 흐물흐물하게 대응한 점이다. 북한 상선들이 감히 우리 국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권위를 짓밟은 데 대해 국민들이 흥분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군 관계자들은 『왜 우리를 매도하느냐』고 흥분했다.

사건 첫날 저녁에 작전 총사령탑인 합참의장이 부대가 아니라 자택 개념인 공관에서 지휘를 했다는 사실도 국민적 공분을 느끼게 한다. 마치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 신문사 간부가 취재기자만 일선에 보낸 채 집에서 지휘한 것과 비슷한 격이다.

1980년대 후반 냉전시대가 퇴각하고 동·서 화해무드가 절정일 때도 소련 선박이나 비행기가 함부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관할 영역을 드나들진 못했다. NATO 일선 지휘관이나 국경수비대가 이를 묵인하지 않았다. 정치가의 협상은 협상이고 임무는 임무였다. 반면 우리 정부는 대북 유화책인 「햇볕정책」을 최전방 일선 지휘부, 말단 소총부대원에게까지 전파, 그들의 판단·행동에까지 적용시키려고 한다.

이번 사태 때 우리 군이 평소와 다르게 미온적으로 대처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만약 일선부대 지휘관들이 일상 행동마저 정치적·외교적 고려를 통해 결정한다면 이것이 바로 전 군대의 「정치 군인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상대방이 월경(越境)을 하면 교전규칙이나 경비수칙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군대의 프로페셔널리즘이다. 우리 군이 최근 비판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단순한 원칙에 복잡한 정치적 고려들을 더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의 일선부대는 김정일이 개방화를 부르짖고 돌아다녀도 변함없이 한국군에 적대적이다.

지난 4월 미·중 군용기 충돌 사건 취재차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머무를 때 목격한 당시 미 정부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국땅에 불시착한 승무원 23명의 송환을 위해 미군 협상팀은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 대통령은 휴양 중인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휴대전화로 협상팀과 얘기를 나누며 격려했다. 결국 승무원들은 부활절 전에 풀려났다. 잘못한 것으로 따지면 중국에 지나치게 접근해 정탐행위를 벌인 미 항공기 탓이 더 크겠지만 미국은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미군들은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77~1981년을 최악의 시기로 꼽는다. 베트남전 패전의 후유증도 있지만 지나친 이상(리상)에 치우친 대통령 밑에서 미군들은 방향을 잃고 군기사고, 사기저하 등으로 무력화됐다. 세계는 미국을 「종이호랑이」라고 비웃었다.

급기야 1979년 11월 이란의 급진 이슬람 학생들이 미국대사관을 습격, 1년 넘게 점령하는 최악의 사태도 일어났다. 카터가 재선에 실패했음은 물론이다. 지도자에 따라 일국의 군은 강군 또는 약체로 쉽게 변함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yjhah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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