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us live as you do (우리도 당신들처럼 살게 해 주세요).”

26일부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중국 베이징(北京) 사무소에서 농성하고 있는 탈북자 ‘길수 가족’이 일본의 인권단체를 통해 영문으로 발표한 성명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길수 가족의 이 평범하고 간절한 소원은 실현될 수 있을까. 우리 정부의 태도를 보면 그런 희망보다는 의구심부터 든다. 정부는 길수 가족의 ‘제3국 추방 후 한국 입국’을 추진하고 있으나, 당국자들은 예외없이 “모든 결정 권한을 중국 정부가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아니라 중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미리부터 “중국이 처한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정부 관계자도 있다.

현 정부가 북한을 자극할까봐 탈북자들을 홀대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북한에서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한 탈북자는 최근 한 매체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탈북자들의 기자회견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탈북자가 한 사람만 와도 언론매체가 떠들썩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세상이 180도 변한 것 같다.”

이번에 길수 가족 사건을 대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태도는 이런 기조에서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심지어 현지에서 일선 사령관의 역할을 해야할 주중 대사관의 한 직원은 “왜 또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모르겠다”고 짜증내듯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로 인해, 길수 가족 사건은 지난 97년 당시 한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로 망명에 성공한 황장엽씨 사건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더욱 더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행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 문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이 문제를 ‘적당히’ 다루고 중국의 ‘처분’만 바란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이하원·정치부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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