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물품 가격은 국가가 정한다. 북한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기관은 국가가격제정위원회다. 원래는 국가가격제정총국이었으나 81년에 위원회 형태로 전환됐고 현재는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 산하 기구로 돼 있다. 사실상 총리 직속인 이 위원회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모든 물품은 이 위원회가 매년 한 번 정한 가격으로만 거래된다.

국가가격제정위원회는 전국 시ㆍ도ㆍ군 지방인민위원회 가격제정국과 기업ㆍ공장 판매과 등과 상의해 각 물품의 가격을 매긴다. 매년 수만 가지의 각종 소비재ㆍ생산재 가격을 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 도매점 소매점 등 모든 국영 상점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매겨진 가격대로만 물품을 팔아야 한다. 암시장 성격의 장마당만은 예외다.

수출입 가격도 국가가격제정위원회에서 매년 한번씩 정한다. 국제시장 가격 이상으로 수입되는 것과 국제시장 가격 이하로 수출되는 것을 피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다.

이 위원회가 특히 신경쓰는 것은 수입 물자 가격이다. 예를 들면 원면(raw cotton)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지난해까지 톤당 1000 달러였다고 하면 올해 이 품목 수입 가격은 1000 달러로 정해지는데 그렇게 되면 이 가격 이상으론 수입할 수 없다. 만약 기상 악화로 인해 원면 국제시장 가격이 1500 달러로 올랐다면 군복을 만들기 위해 원면이 필요한 인민무력부는 원면을 수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번 정해진 수입 가격으로 인해 꼭 필요한 물자가 수입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국가가격제정위원회가 각 수입 물자의 가격을 매년 한 번씩만 수정하는 데서 말미암는다. 이 위원회가 매년 각 수입 물자 가격을 제정할 때 참고하는 자료는 ‘국제무역 시장’이란 외국 잡지다. 이 잡지가 들어오면 먼저 출판검열국에서 검토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 그런 다음 이 위원회에서 이 잡지를 검토해 각 수입 물자의 가격을 수정한다. 먼저 수정안을 만들어 내각의 비준을 받은 다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이처럼 수입 가격을 한 번 수정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리기 때문에 수입 가격이 국제시장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제시장 가격이 정해진 수입 가격보다 떨어질 경우 해당 기관은 여유 돈을 챙길 수 있고, 이는 개인적으로 축재하거나 ‘충성자금’으로 바쳐진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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