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은 정말 답답한 하루였습니다. 군·경이 미군기지가 옮겨갈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에 대한 작전을 감행한 날이었습니다. 연좌 농성과 물대포, 쇠파이프와 죽봉, 강제 진압, 연행…. 수십년 가까이 지겹도록 겪어온 일이 또 다시 평택 팽성읍의 계성초등학교 대추분교라는 작은 시골학교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그날 줄곧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섬뜩한 문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대추분교의 점령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반미(反美) 운동가들이 퍼뜨린 ‘대추분교가 제2의 전남도청이 되고 있다’는 선동 문구입니다.

1980년 광주사태 때 고립된 시민과 학생들이 무장한 채 계엄군을 맞았던 곳이 전남도청입니다. 마치 26년 전과 같은 유혈사태를 예고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다친 사람은 있었지만, 시위대나 진압 경찰 어느 쪽에도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그런 상황이 일어나기도 힘들었습니다.

우리 군은 “두들겨 맞더라도 맞대응을 하지 말라”는 지침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대추분교를 제2의 전남도청에 비유한 것은, 그런 사태를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006년 대추분교와 1980년 전남도청의 가장 큰 차이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전남도청을 광주의 시민과 학생이 지켰다면, 대추분교의 주력은 외지인들입니다. 이번 사태를 주도한 ‘범대위(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에는 무려 138개의 재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총련을 비롯한 통일연대, 전국민중연대 등 이 땅에서 힘 좀 쓴다는 운동권 단체들은 모두 여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더군요.
이들은 대추분교를 반미의 메카(성지·聖地)로 둔갑시켰습니다.

이곳에서 반미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 600일이 넘었다고 합니다. 2004년 8월 평택의 349만평이 미군기지 이전 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직후부터 이곳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불집회가 이어졌답니다. 대추분교는 2000년 9월 학생 수가 줄어 문을 닫은 학교입니다.

그 빈 학교에 반미 운동꾼들이 몰려와 똬리를 틀고, 일종의 해방구로 삼았던 셈입니다. 국방부는 작년 7월, 27억원을 주고 평택 교육청으로부터 이 학교를 사들였지만, 이들이 실력으로 점거하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월만 보냈다고 합니다.
이 학교는 기존 K-6(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로부터 50여m밖에 떨어지지 않아, 반미 시위에는 최적의 명당이었을 것입니다.

공권력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범대위측 인사들이 순찰을 도는 웃지 못할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위권이고,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꼽힌다는 이 나라에서 이런 무법 상태가 20개월 가까이 방치돼 온 것입니다.

더 답답한 것은 이 나라 지도자들의 침묵입니다.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이 사태를 걱정하거나 야단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국민과의 소통(疎通)을 강조해 온 노무현 대통령은, ‘제2의 광주사태’ 운운하는 무시무시한 선동 앞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여야 지도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미냐, 친미냐 하는 것은 공론(公論)의 장에서 얼마든지 다룰 수 있는 사안입니다. 어느 쪽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를 놓고, 토론해 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틀 자체를 허무는 무법과 불법에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군인들에게 “차라리 두들겨 맞으라”는 명령을 내리는 나라를 가리켜,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박두식 정당팀장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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