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형편은 어지러운데 우리 정치는 갈수록 극단으로만 치달리고 있다. 국정과 민생현안에 대한 문제해결 기능은커녕 오히려 일을 더 꼬이게 만드는 이전투구에만 매달려 세월가는 줄 모른다. 입으로는 화합과 상생정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주먹질, 발길질이다. 한입으로는 여야 영수회담을 말하면서 다른 입으로는 원색적 욕설을 쏟아놓고 있다.

여당은 국정을 주도하고 야당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정당정치·의회정치의 기본임에도 우리 정치에는 이런 기본이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북 선박의 NLL 침범과 관련한 안보문제와 6·15선언 1주년을 계기로 한 햇볕정책 평가를 둘러싼 여야의 원색공방은, 바로 우리 정치의 한심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런 대결구조가 여야 당 대변인 사이의 설전의 차원을 넘어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가 사사건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 이제 거의 구조화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회창 총재의 자질과 식견을 의심케 한다』고 운운한 엊그제 청와대 당국자의 비난발언은, 사태가 갈 데까지 다 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김정일 답방 촉구를 「애걸 복걸」이라고 표현한 야당측 용어선택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서 야당총재의 발언을 「비열한 용어를 동원한 비난」이라며 「자질」 운운까지 하는 모습은 정치가 이성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야 다툼에서 언제나 야당쪽이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정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청와대가 번번이 전면에 나서서 개입하는 양상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지난 13일 이회창 총재의 6·15선언 평가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즉각적 개입도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지난 4월 3일 이 총재의 국회 대표연설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그 양식과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물론 청와대는 언제나 뒷전에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심한 싸움질 정치와 「청와대」의 상관관계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싸움의 내용도 문제지만 싸움의 방식이 저질화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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