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상

/이화여대 총장

일곱 살에 떠나온 북녘 땅이었다.

비행기가 순안 비행장에 내린 순간, 지난 50년 세월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압록강이 멀지 않은 곳에 내 유년의 뜨락이 있다. 그러나 기억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내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날 데리고 가라. 안 그러면 너 못간다”하고 울며 매달리셨을 평양 길.

남북이 마주하는 데 55년이 걸렸지만, 비행기는 1시간 만에 나를 북녘 땅에 내려놓았다. 평양의 공기는 청명했으며,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훈풍이 따뜻하게 불고 있었다. 순안 비행장에서 남북 두 정상이 두 손을 다잡고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은 55년 동안 남과 북 사이에 존재해왔던 갈등과 대립의 골을 잊게 하는 따뜻한 모습으로, 신기하게도 자연스러웠다.

평양에서 보낸 2박3일 동안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다. 오랜 체제 대립으로 인해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 폄하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만나 본 김정일 위원장은 매우 인간적이고, 자신만만하며,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몇번의 만찬에서 사선으로 김정일 위원장과 마주 앉았던 나는 사람은 역시 만나봐야 진실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희호 여사를 수행하면서 창광유치원, 수예연구소, 평양 산원을 방문하고 여성계 대표들을 만났다. 최고인민회의 여원구 부의장과 조선여성협회 홍선옥 위원장, 천영옥 등, 우리가 만난 여성 지도자들은 모두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다. 여성의 49%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탁아 시설이 발달하여 여성의 사회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뒷받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남북 여성이 힘과 지혜를 모은다면 세계적으로 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특히 여성은 관계와 조정에 탁월한 능력이 있으므로 여성이 남북을 잇는 통일의 주역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북 여성이 더욱 자주 만날 것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남북이 공동 대처할 것을 원하는 한국 정신대대책 협의회의 뜻도 전했다.

사실 이번 사흘 간의 평양 방문은 극히 제한된 체험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만난 사람들, 경험들은 상당히 준비된 것들로 보였으며, 북녘의 최고 수준을 내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 산원은 훌륭했고 창광 유치원도 좋았지만, 그게 북한 병원의 표준은 아닐 것이고 모든 어린이들이 창광 유치원 수준의 유아교육 서비스를 받는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온 마음을 열고 진솔한 내면을 나누는 순간이 이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번에 가능성을 보았다. 이번 한번 만남으로 당장 뭔가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체제와 이념이 틀려도 하나되고자 노력할 수 있고, 하나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본 것이 사실은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물론, 이산가족이 만나고, 남북 여성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체제와 가치관, 경험이 부딪쳐 불협화음이나 오해도 생길 것이다. 그러나 서로 거듭 만나고, 경험하면서 그런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린 비로소 ‘가능성’을 ‘가능’으로 실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시한 평양 시민들이 다시 만나자며 흔드는 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평화와 상생의 한민족 한핏줄임을 절감하며, 그리고 민족의 통일로 가는 역사의 방향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방향을 모르는 뱃사공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일 수 없다. 반면에, 방향이 확실한 뱃사공은 여하한 세찬 바람도 순풍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이제부터의 과제다.

평양을 떠나기 직전, 선물 한 점 못 샀다는 것을 문득 생각해냈다. 인삼 비누와 자수 작품을 집어 들었다. 수놓은 이들의 훈기가 느껴지는 자수와 인삼향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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