庾龍源
군사전문기자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166만평 부지에 자리잡은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는 1961년 한국에서 헬리콥터 사고로 순직한 미군 벤자민 K 험프리 준위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항공 수송, 통신, 의무, 헌병 등 지원부대와 정보수집 부대가 주로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주력 전투부대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 캠프 험프리가 최근 미군기지 이전 반대 세력과 정부 당국의 충돌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군 안팎에선 평택 미군기지 이전계획이 일부 주민과 ‘평택 미군기지 확정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의 강력한 저항으로 당초 계획보다 지연됨에 따라 “평택기지 조성이 물 건너 가면 한미 안보동맹이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사업 추진을 위해 과장된 안보위협을 하는 것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과연 그런가? 캠프 험프리는 흔히 ‘용산기지 이전 지역’으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용산기지보다는 주한 미 지상군 주력 전투부대인 2사단이 옮겨갈 면적이 훨씬 넓다. 새로 매입된 팽성읍 일대 289만평 중 용산기지 이전지역은 38만평에 불과하지만 2사단과 다른 미군기지들이 옮겨갈 지역은 251만평에 이른다. 기지확장 지역의 86% 가량을 2사단과 다른 미군기지들이 차지하는 셈이다.

실제로 새 평택기지에는 한미연합사령부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군사령부, 미8군사령부 등 용산기지의 사령부들 외에 제2사단사령부와 예하 여단, 제1중(重)여단 전투팀(HBCT) 본부 등 주한 미 지상군 주력 전투부대가 모두 집결하게 된다. 또 2008년까지 주한미군 총병력 2만4500명의 60%에 해당하는 1만4500여명이 평택기지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처럼 1개 기지에 미군의 두뇌와 심장부, 타격력이 한꺼번에 집중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평택기지는 인근 평택항과 기지내 활주로를 활용,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하늘과 바다로 미 병력과 장비가 드나드는 관문 역할도 하게 된다. 오키나와 미 해병대기지로부터 24시간 이내에 병력과 장비를 한반도에 수송하는 고속수송선(HSV)이 최근 진해 대신 평택에서 종종 하역훈련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송기 등 미 항공수단은 주로 오산기지를 활용하게 되지만 캠프 험프리의 활주로 또한 미 수송작전의 주력인 C-17 수송기가 착륙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지금은 활주로 기반이 약해 C-17과 같은 대형 수송기의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주한미군의 ‘감독 겸 주장(主將)’이 되는 평택기지 계획이 상당기간 지연되거나 무산된다면 미군이 “한국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촉박한 기한 내에 평택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새 이전 후보지를 찾는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요즘 평택에선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제2의 새만금 사업이 될 것” “지방선거 때문에 5월31일 이전에는 정부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들이 그럴싸하게 떠돌고 있다고 한다. 반면 미군은 캠프 험프리에 6억4500만 달러를 들여 25개의 새 빌딩을 짓고 이미 통폐합된 미군기지들의 병력을 험프리로 이동시키는 등 2008년을 목표로 한 이전계획 실행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서두르는 미군과 발목 잡힌 한국 정부. 아직까지는 ‘굳건한 동맹과 협조’를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지만 곧 파열음이 날 것 같아 불안하다.
/bemil@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