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눈 앞에 둔 미묘한 시점에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 방문 소식은 국내외에서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와 장쩌민(강택민) 주석의 정상회담 배경과 의제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최고지도층은 남·북한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와 관련된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전개되고 있는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전략적 이해의 폭을 넓히고 양국 간의 협력을 조율하려 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사실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 방문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작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중국 방문 이후 북한은 한·중 수교 이후 불편했던 양국관계를 청산하고 김정일 총비서의 공식 방중을 추진했다. 더구나 지난 3월에는 김정일 총비서가 파격적으로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함으로써 중국과의 ‘특수한 관계’임을 과시했기 때문에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 방문 자체가 의외의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10여일 앞둔 시점에 중국의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북한 방문을 연기시키면서까지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나서서 장쩌민 주석과 협의하려고 한 배경은 무엇일까. 물론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미국·일본 간에 전개되는 일련의 공조 움직임에 대응하려고 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전술적 외교대응의 차원을 넘어서 김정일 총비서는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북한의 기본적 입장에 대해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확보하고, 탈냉전 시대에 북한과 중국 간의 ‘전략적 제휴관계’를 확인하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추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김정일 총비서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진 화해와 협력 문제보다는 7·4 공동성명에서 밝힌 이른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을 재강조하고, 미·북 간의 평화조약 체결을 통한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대단결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협력을 적극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의 입장에 대해 중국은 기본적으로 지지 의사를 표명했을 것이고,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일과의 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키려는 북한의 노력을 측면지원할 것을 약속했을 것이다. 대만문제로 미국과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중국의 통일정책과 부합되며,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제휴관계는 미국과 일본의 패권주의를 견제하려는 중국의 전략이익과도 합치되기 때문에 이번 양국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탈냉전시대의 폭넓은 협력관계를 재확인했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탈냉전시대에 중국은 미국·일본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일 주도의 신국제질서를 경계하여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추진해왔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와 불필요한 대결보다는 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면서도 이들의 패권주의를 견제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극심한 경제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적극적으로 서방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에 전면적으로 복귀하는 것을 환영·지지하면서, 동시에 한국·미국·일본의 공조관계에 대항하여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북한·중국·러시아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는 김정일의 전략 구상에 대해서도 협력을 약속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우리의 대응자세도 재점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남북정상회담을 단순히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이란 좁은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이란 폭넓은 전략구도에서 접근해야 하며, 이와 같은 전략구도에 대한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가들과의 폭넓은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정상회담과 그 이후 전개될 복잡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서진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