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원 증언....1990년 황해도 안악에서

1990년 초 북한 황해남도 안악군에서 86명의 지하 기독교인들이 국가안전보위부에 발각돼 일부는 처형되고 나머지는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사건이 있었다고 최근 탈북한 보위부 출신의 이민수(가명)씨가 밝혔다. 보위부내에서 ‘황해도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은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지하 교회 탄압사건이다.

이 사건의 전모는 1996년 보위부 내부 비밀강연자료에 상세히 밝혀져 전 보위원들이 참고했으며, 체포에 공로를 세운 보위부 비밀정보원의 육성녹음테이프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당시 보위부에서는 남한의 ‘악질’ 목사들이 성경책을 밀반입 시켜 북한 내부를 끊임없이 파고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단서를 잡지 못해 혈안이 됐다. 수십년 보위부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보위원이 다리 관절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27세의 딸을 정보원으로 끌어들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안악군에서 의심이 가는 지하교인에게 접근해 그에게 전도당하는 것처럼 위장해 침투했다. 교인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김일성 초상화도 잘 달지 않았다.

보위원의 딸은 오랜기간 공을 들인 끝에 지하 교인들의 예배장소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교인들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예배 전에 차례로 자기 소개를 했다. 어디 사는 누구고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됐고 등등. 이 이야기를 비밀 보위원은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86명의 신상명세를 전부 외울 만큼 그녀의 기억력은 비상했다.

그녀의 보고로 비밀 교회는 무너졌다. 그녀는 비밀정보원에서 정식 보위부지도원으로 승격됐고 최고훈장인 노력영웅메달까지 받았다. 김정일로부터 금으로 된 명함시계와 컬러TV, 냉동기(냉장고)까지 선물로 받았다.

이민수씨는 북한 사회가 식량난 등으로 불안해지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확산되고 있어 국가보위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처벌이 엄중해 질수록 종교 활동도 더욱 은밀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철환기자/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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