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회담 준비와 더불어 회담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할 때가 되었다.

거의 모든 정상회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경우에도 정부는 회담을 끝내는 순간부터 대성공이라는 홍보를 적극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의 정상이 직접 관련돼 있는 만큼 실패나 실수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성공만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그들의 정상의 역할을 선전하는 열의가 남한에서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체제성격상 불가피한 일이다.

다만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점은 북한의 홍보내용이 앞으로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지, 아니면 계속 폐쇄와 대립을 뜻하는 것인지 하는 문제다. 북한의 선전내용이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김정일의 영도력의 성과로 묘사한다면 그 만큼 북한이 남북 간에 합의한 사항을 지킬 생각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합의내용을 왜곡한다든가 또는 전적으로 무시한다면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낙관할 수 없게 된다.

한국정부는 북한이 무어라고 말하건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홍보하기 위해 앞으로 기대되는 효과를 과장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기 쉽다. 거기에 더욱이 우리 언론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이벤트성 보도를 하면서 정상회담의 성과를 부풀려 올리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흥분을 잘하는 우리 국민들은 남북관계의 미래 전망에 대해 장밋빛 꿈 속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까 북한은 곧 개방할 것이며 통일까지는 모르지만 남북 간 자유왕래쯤은 곧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만일 정상회담 이후의 한국사회 분위기가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북한의 안보 위협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보수반동주의자로 몰릴 것이 뻔하다.

그러나 물론 정상회담을 했다고 해서 우리의 안보상황이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 측이 안보문제와 관련하여 그 어떤 중대한 약속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북한이 그런 약속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우리들 자신이 확인하기까지는 우리의 안보문제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남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열리는 것이며 북측이 기대하는 것은 경제협력이다. 따라서 남한 측은 경제협력을 제공하면서 북한 측으로부터 안보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합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기술적 사항까지 다룰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방향에서 남북관계를 조종해 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두기로 합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안보 문제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남측이 경제협력만 약속하고 ‘민족’운운하면서 남북 간에 화해가 이루어진 것처럼 행동한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질 위험이 크다.

더욱이 남측이 제공하는 경제협력이 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을 증강시켜줄 수 있는 성격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 경우 우리의 안보가 불안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나라 안에서도 국민여론은 분열되고 야당과 국회의 역할은 자연히 확대되어 여야 관계는 크게 경색될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회는 우리 편에 있다. 잘하면 북녘의 동포들에게도 살길이 열리고 한반도에는 평화가 깃드는 힘들고 어려운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과장된 홍보와 장밋빛 꿈을 버리고 냉철한 현실감각을 가지고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