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좌·우파 모두 새 길 찾기가 한창이다. 1970~80년대에 만들어진 기존의 이론과 정책으로는 21세기에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좌파는 좌파대로, 우파는 우파대로 제각각 성향이 맞는 신문·잡지들의 기획특집과 사회·학술단체들의 토론회를 통해 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자 내부의 입장 차이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노선 투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좌파에서는 ‘민족·통일’ 중심의 입장과 ‘민중·민주’ 중심의 입장이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위해 힘을 합쳤던 운동권의 양대 산맥이 앞으로의 전망을 놓고 다시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양 진영의 지식인 그룹을 이끌고 있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최근 상대 입장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백낙청 교수는 ‘창작과비평’ 창간 4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마치 통일이 ‘남의 일’인 양 분단 문제를 도외시하는 분위기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반도의 현 상황이 ‘흔들리는 분단체제’를 지나 ‘도래하는 통일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하는 그는 한 좌파 신문이 진행하고 있는 새 길 찾기 포럼에 대해서도 “쟁쟁한 지식인들이 개혁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분단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최장집 교수는 참여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시민과세계’ 2006년 상반기 호에 실린 ‘해방60년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는 기고를 통해 “한국의 근대사는 곧 민주주의를 향한 전개 과정이며, 그 주역은 민중”이라며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통해서는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와 위기·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현대사를 ‘분단시대’로 정의하고, 통일을 절대명제처럼 상정하면서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족’ 중심 입장의 핵심 개념인 ‘분단시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다.

백낙청 교수는 “필요에 따라서는 실명 비판과 같은 논쟁적인 글쓰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본격적인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양 진영의 논쟁이 80년대 중반 운동권을 뜨겁게 달궜던 ‘NL(민족해방)-PD(민중민주주의) 논쟁’을 그대로 재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이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동구(東歐)사회주의 몰락과 전지구화·정보화의 급속한 진행 등 엄청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를 “NLPD의 이념에서 혁명적 급진성을 제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이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아직은 충분히 현실적이고 역사적이지 못한 것 같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의 성과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룩한 ‘성공’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 없이 미래에 대한 올바른 구상은 불가능하다. 최 교수는 ‘근본주의적 민족주의’를 비판했지만, 그 역시 ‘근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논쟁에서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는지는 누가 먼저 ‘근본주의’를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李先敏 문화부 차장 sm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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