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 1주년의 시점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의 경위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조선일보가 보는 남북문제는 북한을 어떻게 「혁명」에서 「공존」으로 전환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우리 내부의 태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뒤따른다. 70년대 중반부터 이미 우리는 북한을 「공존가능한 상태」로 끌어내는 것을 한반도 통일·평화 정책의 대종으로 삼아왔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공존가능한 상태」란 북한은 북한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받고 존중받는 원칙 하에서의 교류·협력의 점진적인 확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이 추구해온 한반도 통일·평화 정책은, 같은 「통일」 「평화」란 단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국정원 철폐, 반미투쟁을 「통일」 「평화」의 본질적인 내용으로 이념화하고 있어, 그것이 우리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한 평화공존」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남북관계가 그간의 숱한 대화와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한 근본원인이 있는 것이다.

6·15는 이를테면 그러한 경색상태를 일거에 타개하려던 「위로부터의 충격요법」이자 「선공후득」을 기조로 한 중대결단이었다. 남북한 양쪽에 굳어진 50년간의 퇴적물을 최고통치권 차원에서 일거에 깨뜨리려 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경과한 오늘의 시점에서 목격하는 것은 무엇이 많이 변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전에 비해 현저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한의 안보이념과 안보인식이 『북한이 무리수를 둬도 그들을 자극하지 말아야…』하는 현 정권의 더 우선적인 정치적 배려의 하위개념으로 추락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별로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선공」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의 「후득」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북한 관영매체가 우리의 상호주의 여망에 대해 『남조선 우익보수세력을 비롯한 반통일분자들은… 상호주의를 해야 한다느니 하고 비틀었으며…』라고 한 대목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교류·협력·통일의 상대방으로서 남한 다수파 주류세력의 여망을 「반통일」로 낙인찍고 상호주의를 비방한다면 그 통일은 과연 누구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며, 우리는 오로지 일방적인 「퍼주기」 기계에 불과하단 말인가.

북한이 그렇게 폄하하는 남한의 다수파 세력이야말로 한반도 남북의 파국적 체제타파 아닌 현상유지적 평화공존론을 선도해온 주체였다. 북한주도의 혁명통일뿐 아니라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까지도 다 함께 우회할 수 있는 상생의 묘책으로서 고안된 것이 바로 70년대 이래의 남측 주도세력의 공존적 평화정착론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이 진실로 「혁명」아닌 「공존」을 추구한다면 남한 주류진영을 좌파적 통일전선 전술로 몰아치려는 종래의 대남전략에 더이상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조선일보는 김대중 정권의 지금까지의 「햇볕정책」에 대해 몇 가지 고언을 해왔다. 북한에 대해 필요한 지원을 해주고 그러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북한의 점차적인 태도변화를 유도한다는 「햇볕」의 기본취지는 일관되게 살려나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6·15 이후 1년」이 오늘과 같은 답보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현 정부의 「햇볕」 추진방식과 이를 받아들이는 북한의 대남인식에 무언가 중대한 결함이 내포돼 있음을 방증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적대적 봉쇄전략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지만 무원칙한 비위맞추기나 일방적 「짝사랑」으로도 역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그간의 경험에 바탕해서 앞으로의 우리 대북기조는 원칙주의와 호혜주의에 입각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의 논지는 북한의 안전보장과 민생문제에 진지하게 협력하는 그만큼 북한도 우리의 안보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이념적·실제적 대남 교란전략을 하나 하나 철회해 나가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대북지원과 연계해 엄정하게 검증해야 하겠다는 것,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국내적으로는 그간의 「햇볕정책」이 수반했던 남·남(南·南)갈등과 안보의식 해이,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이념적 양극화 현상이 국가 정체성의 이완징후로까지 확산되었음을 현 정부가 솔직히 시인하고, 앞으로는 특정한 경향성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잡힌 위상에서 대북정책을 국민적 컨센서스에 따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현 정부 지지그룹+북한정권」의 악수만으로는 원만한 대북정책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충하는 세력들의 공통분모를 뽑아내는 것은 물론 지난한 일이다. 그러나 「다양성 속의 공존상생」이라는 철학의 참뜻만 깨칠 수 있다면 그 기술적 방법론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한·미 공조의 효율성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냉전해소를 위해서는 미·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나, 그것이 북한의 오산 없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한·미」가 확고하고 견실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탈미나 반미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을 그르치는 장본일 뿐이다. 오늘의 민족주의는 국제정치적 실익을 도외시하거나 이념적 편향으로 가는 소승적 위치에 안주할 수 없다.

끝으로, 대북정책을 정권재창출이나 대통령의 업적주의와 직결시키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현 정권이 중대한 위험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통일문제 자체에도 엄청난 훼손을 입힐 것이다. 우리 정부의 의연하고 융통성있는 대처와 북한 지도부의 발상의 현실화와 실용주의화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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