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국은 14일 남북 정상이 5개항의 합의를 이룬데 대해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전반적으로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으나, 회담 결과가 향후 미국의 동북아 방위전략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합의문에 서명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고,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은 “정상회담이 가져온 결과에 환영하며 앞으로 한반도 긴장완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대변인은 이번 회담의 향후 어떤 결실을 맺을 지에 대해서는 지켜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록하트 대변인은 “앞으로 결실을 맺어 나가는 과정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난 이틀간의 성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기제(mechanism)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특히 “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이슈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인식한다”며 “아직 분석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혀, 남북간 합의사항 중 일부에 대해서 미국이 경각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바우처 대변인은 또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한 국가 미사일 방위(NMD)체제를 계속 추진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추진 계획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의) 잠재적인 위협이 해소됐다는 어떤 변화의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우처 대변인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논의됐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록하트 대변인은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에 대한 질문에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단계에서 얘기하지 않겠다”며 “한반도 안정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확고하며 우리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기대하면서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등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 빚어질 가능성을 내심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두 대변인은 이날 전날인 13일 1차 정상회담이 끝난뒤 가진 브리핑보다 다소 냉정한 반응을 보여, 미국이 내심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불편해 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록하트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미·북 관계 정상화 가능성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당사자들의 직접 대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추진해왔으며 이번 회담은 그 정점”이라고 말해, 향후 미·북 관계 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 러시아

“러시아는 남북한의 두 지도자가 만난 것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및 남북한 화해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14일 밝혔다.

야코벤코 대변인은 러시아 정부 공식 입장을 이같이 밝히고, “만일 긴장완화 및 화해가 이뤄진다면 최소한 남북한 평화공존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며, 나아가 양측이 이미 합의한 화합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의 전망도 밝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코벤코는 “한반도가 실질적 평화로 나아간다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며, 이는 러시아의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두 정상의 만남이 남북한은 물론, 러시아를 비롯한 관련국들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점을 만족스럽게 여긴다”고 덧붙였다.

현재 모스크바는 남북정상회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 7월19일로 잠정 예정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레오니드 이바쇼프 러시아 국방부 대외협력 국장은 14일 “푸틴 대통령의 7월 북한 및 중국 방문의 주요 의제는 미국의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협정 개정 요구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크렘린궁의 고위 관리는“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중반 전화통화를 통해, 장쩌민(강택민) 중국 국가주석과 북한 방문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 논의 결과로 인해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예정 사실이 9일 공식 발표됐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만약 푸틴 대통령이 방북을 통해, ‘더 이상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 이 ‘선물’을 들고 오키나와 G8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있다면, 이는 푸틴 외교의 대성공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불량국가’가 아닌 ‘정상적인’ 국가로 간주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북한 설득 가능성에 대해서는, “94년 국제사회가 핵문제와 관련, 김일성을 설득한 적이 있지 않느냐”고 되물은 뒤, “장거리 미사일 문제도 설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외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사견(사견)을 전제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남북평화공존을 향한 ‘역사적 걸음’이나, 남북평화공존문제와 남북통일문제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평화공존이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나, 잘못하면 평화공존이 남북분단을 공고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한국민들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모스크바=황성준기자 sjhw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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