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5일) 오후 3시 서울 YMCA 강당에서는 신간회 창립 제79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1927년 2월 15일 신간회가 창립됐던 것과 같은 날 같은 장소다.

국내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좌우합작 운동이었으며 최대 항일독립운동 단체였던 신간회는 광복이 되고 60년이 넘도록 그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였다. 이념적 대립이 극심했고 진정한 우파 민족주의 세력과 진정한 좌파 사회주의 세력이 소진했기 때문이다.

이상재·안재홍·신채호·조만식·한용운·홍명희 선생 등이 이끈 신간회는 4년간 짧은 불꽃을 태웠으나 좌우합작·근대주의·반(反)자치·철저항일의 유산은 오늘에 더욱 빛난다.

신간회는 전국 140개 지회와 약 4만명의 회원으로 뭉친, 일제하 최대인원이 참여한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다. 한반도의 인구가 1000여 만에 불과하고 교육 수준도 낮았던 당시 4만 회원이라는 숫자는 사실상 친일파와 자치파를 제외한 조선인 지도자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런 폭발은 국내에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셈이다. 신간회의 우익인 민족주의 세력과 좌익인 사회주의 세력은 오늘의 좌·우익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민족독립이라는 대의(大義)에 일치할 뿐 아니라 운동방식에도 비타협·비폭력·기회주의 배격이라는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었다.

신간회의 우파는 오늘의 사이비 우파와 같이 부패하지 않았고 대의에 몽매하지 않았고 기회주의적이지 않았다. 신간회의 좌파는 오늘의 사이비 좌파와 같이 폭력이나 외부 지령에 맹목(盲目)하지 않았고 비인간, 반(反)생명, 반(反)문명을 용서하지 않았다.

오늘 이 땅에는 사이비 좌파와 사이비 우파들이 판치고 있다. 한국 역사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김일성·김정일 부자 독재를 찬양하는 친북(親北) 가짜 민족주의가 어찌 사회주의 좌파라 할 수 있는가.

대통령이 청와대에 앉아 4000억원씩 받아 챙기는 부패를 용서하는 보수가 어찌 나라를 지키는 보수라 할 수 있는가. 불법과 폭력을 조장하는 진보가 어찌 하늘을 우러러 민족과 민중을 말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위대한 기회와 절명한 위기의 갈림길에 있다. 세기적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에 있다. 1945년 이후 한국인의 잠재력이 폭발하여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5000년 한국통사(通史)에서 있어 본 적이 없는 ‘한국 문명’의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안으로는 국가 공동화(空洞化), 사회 해체, 대한민국 부정(否定)이 진행되고 있다.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19세기 말보다 더 힘든 주변 국제관계의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까지 붕괴할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내부적으로는 가족과 교육이 붕괴되고 자살률과 저(低)출산율이 세계 1등을 달리고 있다. 국가 부정, 체제 부정, 역사 부정의 영화와 ‘삐라’들이 젊은이들을 흔들고 있다.

이 갈등·혼돈·위기에서 극진하고 경건한 자정(自淨)의 눈물과 땀을 통하여 새로운 주류가 나와야 한다. 79년 전 신간회의 주류를 오늘에 다시 만들어야 한다.

‘21세기 신간회’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보수이되 개혁적이고 부패하지 않고 이기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 진보이되 현실적이고 폭력을 거부하고 아집을 거부하는 사람들, 좌우와 보수·진보 모두 사회공동선, 국가공익, 보편윤리에 충실하고 이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엘리트 군(群)이 그런 주류이다.

이제 광복 60주년을 지내고 ‘경제 제1주의’와 ‘민중민족 제1주의’라는 양 극단의 독성(毒性)을 이겨낸 진짜 우파와 좌파가 나올 때가 되었다. 진짜들은 합작할 수 있다. 국익·공익·인류의 공동선(共同善)에서 합작할 수 있다.

/김진현 · 민세 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 회장·前 서울시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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