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가 한국문학 열기로 뜨겁다. 한국·스위스 공동 주최의 작품 낭독회, 한국고미술전시회, 한국 페스티벌, 그리고 스위스 문학전문지들의 한국특집 등이 줄을 잇고 있다. 또 한국·스위스 교류 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 문화 행사를 반영하듯 이곳 신문들도 한국 관련 기사를 크게 다루고 있다.

우선 소설가 김주영 오정희 김원우, 시인 김광규 황지우 그리고 평론가 김병익 성민엽 등 스타급 문인들이 이번주 ‘스위스 초청 한국 작가단 작품 낭독회’에 참가하고 있다. 스위스 측에서는 취리히시 문학포디움, 취리히 박물관협회, 올텐 문학그룹, 바젤 문학의 집, 프로헬베치아문화재단 등 5개 단체가 공동 주최했으며, 한국 측에서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파라다이스문화재단 등이 행사진행과 재정지원 등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일 저녁 8시. 취리히시 게젤샤프트박물관. 독일어 사용 스위스인 60여명과 한국교민 20여 명이 대형 홀을 메운 가운데, 김광규와 오정희의 한국어 작품 낭독이 있었고, 이를 받아서 유명 여배우 그라치엘라 로시 씨가 감동적인 억양으로 독일어 번역본을 낭독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낭독회는 2시간 이상 진행됐다.

스위스 청중들은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무엇이 가장 한국적인 것인가 ▲한국문학의 민족성 보편성 등을 전제할 때 북한을 외국으로 보는가, 민족으로 보는가 ▲산업화 과정에서 자연을 숭상하는 경향이 서정시에서 어떻게 승화되고 있는가 등등을 물어왔다. 취리히시 문학·미술 담당관 로만 헤스 씨는 “이 낭독회가 3월19일부터 7월 9일까지 취리히 리트베르크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고미술전시회’의 전체적인 모양을 한층 완벽하게 해주는 행사”라고 말했다. 유럽 순회전시의 형식으로 취리히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고미술전시회’에 대해 리트베르크 박물관 관계자는 “하루 150명 안팎, 일주일에 1000명 정도의 관람객이 방문,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토요일은 이곳에서 스위스 최초로 한국영화 민속공연을 소개하는 한국문화축제(Korea Festival 2000)가 벌어진다.

이에 앞서 스위스의 대표적 문학전문지 ‘드레풍크트’가 지난 봄 한국현대문학 특집호를 엮었으며, 문화교양월간지 ‘두’ 역시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국소개특집을 펴낸 바 있다. 스위스 사상 처음으로 한국문화가 대대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셈이다.

소설가이자 드레풍크트 편집장이기도 한 루돌프 부스만씨는 김병익 김주영 오정희 등과 가진 별도 인터뷰에서 ▲소재빈곤을 느끼지는 않는가 ▲자료들을 어떻게 수집하는가 ▲작가의 사회적 지위는 어떻게 보장되는가 등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부스만씨는 “한국 작품에는 내면의 세계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 상상력을 고도로 발현시키는 측면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비평하기도 했다.

취리히 신문들은 ‘드레풍크트’와 ‘두’의 한국특집, 한국고미술전시회, 한국작가 작품 낭독회, 작가 이문열 이승우 등 특정 작가에 대한 보도를 연일 계속하고 있다. 다다이즘의 본원지인 카바레 볼테르가 소재하고, 그리고 19세기 독일 리얼리즘 작가 뷔히너, 러시아 혁명지도자 레닌 등이 한때 머무르기도 했던 취리히―. 이곳에는 자코메티 그리고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교회 만으로도 문화적 향취가 드높다. 지금은 아카시아향을 닮은 가로(가로)의 보리수 꽃향기가 한국문학 열기와 함께 취리히의 온 시가를 점령하고 있다.

/취리히=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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