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90일 넘게 가뭄이 지속됨에 따라 가뭄 피해방지를 위한 `가뭄과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95년에 `100년만의 대홍수'라는 엄청난 수해를 당한데 이어 96년에도 117개 시.군을 휩쓰는 수해를 당했고, 97년 이후부터는 5년 연속 장기적인 가뭄현상으로 농업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

현재 북한 지역을 휩쓸고 있는 가뭄과 고온현상은 예년에 비해 훨씬 더 장기화되고 있고 피해지역도 북한 전역에 걸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가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확산은 지난 3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이상고온 현상에다 강수량이 크게 부족한데 그 원인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일 지난 3월 초부터 현재까지 90여일간 북한 전역을 덮친 가뭄이 '기후학적으로 볼 때 1000년 만에 한 번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며 이 기간의 강수량은 평균 18.3㎜로 예년 같은 기간의 11%, 지난해 같은 기간의 17% 수준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북한 지역 전반에 걸쳐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이상고온 현상도 자주 나타난 것으로 전했다.

지역별 강수량은 30년간의 평균 강수량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청 관계자에 따르면 6월 하순까지 극심한 가뭄이 해소될 기미가 적고, 장마기간에도 장마전선이 북상해 북한 지방에 충분한 비를 뿌릴지 여부도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지난 1727년에서 전례없는 `왕가뭄'이 90여일간 지속되어 막대한 농업생산물에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의 가뭄은 이 당시의 수준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피해정도가 심대하다는 것이다.

북한 농업성의 김혁진 부국장은 지난 6일 조선중앙방송에 출연, 6월 초까지 북한의 가뭄 피해면적이 전체 농경지 면적의 72%에 해당하는 133만여정보에 달하며 감자와 밀, 보리, 강냉이의 80∼90% 이상이 말라 죽었다는 피해자료를 내놓았다.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피해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신문.방송들도 연일 각 기관과 주민들이 총동원되어 가뭄피해 상황과 함께 피해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매체에 따르면 북한은 무엇보다 모내기를 제때에 끝내기 위해 전력과 양수장비를 총 동원, 관개용수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전력공업성에서는 양수용 전력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전력 사용량이 많은 공장. 기업소별로 `교차생산조직'(시차가동 체계)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농업성 등에서는 피해현지에 간부들을 파견, 피해상황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관개시설 정비에 나서는 한편 농업용수 운반에 필요한 트랙터, 강우기, 양수기, 물달구지 등 모든 농기계를 총동원, 논밭에 물을 대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각지에서는 농작물 물대기를 위해 모든 기관. 기업소는 물론 도시의 말단 행정단위인 동과 인민반 가두여성(가정주부)들까지 대대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5월말 현재 농업용수 지원을 위해 평안남도에서는 매일 약 16만명, 강원도에서는 평균 7만5000여 명, 황해남.북도에서도 각각 약 26만명과 17만명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북한 방송들은 전했다.

지난 5일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적인 대책으로 모든 양수설비와 노력(인력)을 가뭄 피해방지에 총동원하고 있으나 피해상황은 여전하다'고 그 심각성을 전했다. 현재 북한농촌들에서 가뭄피해를 가장 심하게 당하고 있는 지역을 보면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지역 등으로 사실상 북한 전지역이 해당된다.

특히 서해 곡창지대인 황해북도와 평안남.북도의 논농사에 타격을 입혀 곡물생산이 크게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북부지역인 함경도와 평안도지역의 가뭄은 북한의 주식이라 할 감자와 강냉이 등 발작물의 생산량을 떨어뜨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 지역에 몰아친 올해 최악의 가뭄은 90년대 중반 대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 때 처럼 또 다시 기아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곡물 생산량은 292만t이었다. 북한의 농업부문 관계자도 지난해 9월 가뭄과 고온 등으로 인해 100여만t 가량의 알곡(곡물) 수확량이 감소되었던 것으로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최소 곡물요구량이 478만5000t인 것을 감안하면 186만t 가량의 곡물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WFP를 통한 일본의 50만t 대북 쌀 지원도 지난 1월 시작됐지만 6월 현재까지 절반 수준 밖에 지원되지 않고 있는 등 춘궁기 배급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이 10만t의 대북 곡물지원을 발표하는 등 국제적인 지원이 잇따르고는 있으나 북한 주민들의 배급량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따라서 북한은 올해도 예년처럼 국제적인 대북 식량지원을 공식 호소하는 것이 불가피해 질 전망이다.

북한이 연례적인 가뭄피해를 겪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이상기후 등 자연현상의 영향이긴 하지만 농업정책의 구조적 모순과 영농시설 낙후 등도 적지않은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지난 70년대 이후 줄곧 농촌기술혁명의 기본내용으로서 수리화, 기계화, 전기화, 농업화를 제시하고 관개수로를 비롯해 양수장, 저수지 건설 등에 주력했지만 제대로 실효를 거두지 못해 농업증산을 위한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역대 수로공사 가운데 최대규모로 건설중인 `개천-태성호' 수로공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입장이다. 지난 99년 11월 착공된 이 공사는 평남 개천시 대각리에서 순천시, 숙천. 평원. 대동. 증산군 등을 거쳐 남포시 강서구역의 태성호까지 잇는 장장 160㎞의 대공사다.

북한 언론들은 `개천-태성호 물길공사가 내년에 완공되게 되면 서해곡창지대의 농업용수와 식수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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