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부가 탈북주민 7명 강제송환 사건의 책임을 언론보도 탓으로 돌리는 등 책임전가에만 급급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사건초기부터 “언론이 보도하면 문제해결이 어려울 것”, “신문 부수를 늘리려고 탈북자 문제를 크게 취급하느냐”며 언론보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도 14일 “탈북자 문제가 보도돼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7명의 탈북자들을) 송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해, 외교부가 청와대에 사건경위를 보고하면서 진실을 호도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외교부 당국자들의 지적과는 달리 외신이 사건 전말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나서 20일이나 지나서야 국내언론들이 보도하기 시작했다. 호영일(30)씨 등 탈북주민 7명이 러시아 연해주의 국경수비대에 체포된 날짜는 작년 11월11일. 다음날인 12일 러시아의 이타르 타스 통신이 맨먼저 탈북주민 7명의 체포사실을 타전했고, 블라디보스토크 신문 등 현지언론들도 흔치 않은 사건인 만큼 비중있는 뉴스로 다뤘다. 특히 연해주 TV방송국은 항카 호수 부근에 있는 국경수비대 막사에 구금된 호영일씨 등을 직접 인터뷰, “우리는 돌아가면 죽습니다”는 생생한 목소리를 12일 저녁뉴스로 방영했다. 외국언론으로선 일본 산케이(산경)신문이 처음으로 보도했다. 국내에선 연합뉴스가 이타르타스 통신과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를 인용, 국제뉴스로 각 언론사에 제공했으나 전재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조선일보가 연해주 현지 취재를 통해 보도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 만인 작년 12월1일이었고, 이들 탈북주민들이 한국행이 어렵게 됐다고 보도한 것은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이들을 중국으로 추방하고 나서 일주일이 흐른 뒤인 지난 6일이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가 자신들의 외교력 부재를 언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성토했다.

/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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