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의 남북간 평양 정상회담은 중대하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인내와 의지의 산물이다. 김대통령은 북한의 예측할 수없는 행동, 증오에 찬 비난과 도발을 견뎌냈다. 그는 한반도의 장기 문제 해결에 남북한 정부의 직접 대화가 최선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또한 남북 직접 대화의 위험을 인식하고 군사 도발에 대한 강력하고 확실한 억제 정책을 3대 기본 원칙의 하나로 유지하고 있다.

나는 김대통령이 북한과의 고위 당국자 회담이 지금이 적기임을 안다고 믿는다. 미국의 북한 지원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과거 북한은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협박·위협·애원을 서슴지 않았고 그 결과 약 800만 달러로 추정되는 보상을 획득했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한 식량 배분을 감시할 방법은 없으며, 미국 일각에서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수혜자에 대한 식량 지원이 무분별한 낭비라고 비평한다. 미 의회도 이제 이 위험하고 소모적인 행동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남한은 당근·채찍 정책을 현명하게 구사해왔다. 북에 대한 남한의 재정 지원은 상당해 보이지만, 북측이 성의있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 이익은 재정 지원 이상이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난은 구조적 결함에 따른 것이다. 개혁과 변화에 대한 압력은 스탈린주의적인 북한 내부에서조차 가중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무지개같은 희망을 지닌다. 그러나 북한의 적절한 보답이 전제되어야 하며, 김대통령의 정책과 조심스런 조율이 필요하다. 중국은 대량살상(WMD) 무기가 한반도에서 제거되길 바라는 한편 미국의 군사적 존재와 영향력 감소도 원하고 있다.

이들 목표는 북한의 호전성과 비밀무기 계획에 배치된다. 중국은 남북 대화를 공개 지지했고 북한의 경제 개혁을 장려했다. 이런 목표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중국은 진심으로 정상회담을 지지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분산시키는 기회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풍부한 남한이 협상을 주도하고, 미국은 주도적인 위치에서 기꺼이 한걸음 물러서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전쟁 억지와 WMD 확산 방지 및 개발 제한이라는 중요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에서 순진한 면을 보여왔다. 기초합의서(Agreed Framework)는 문제 많은 서류다. 다만 초기 KEDO 운영은 능숙했다. 실수는 미 행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과 중유 제공 예산 확보를 위해 북한을 대신해 미 의회에 애원해야 했던 점이다. 북한은 ‘지원 아니면 전쟁’이라는 협박을 성공적으로 활용했고, 이내 ‘나쁜 습관’에 길들여졌다. 4자 회담과 금창리 지하 시설 사찰처럼 용인해야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무조건 식량 지원이라는 나쁜 습관을 발휘했다.

북한은 보다 포괄적인 전략 체계 수립과 KEDO 기금 유지를 위해 작성된 페리 보고서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한국·미국 간 공조를 능가하는 무엇을 내놓아야 했다. 이것이 북한을 남한과의 대화에 나서게 했다. 대안이 없어진 북한이 새로운 활로를 찾은 것이다.

북한은 외부 지원 유치와 정권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기로에 있다. 북한은 세계의 관심을 끌고 미국과 한국, 일본을 좌지우지하려면 군사적 위협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주민 통제를 위해서도 군사력이 필요하다. 경제 체제 변화와 개혁은 필연적이지만 북한은 적국에 대한 교묘한 책략과 이간질을 통해 변화와 개혁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북한은 중국과 한국 간 완충국 지위를 유지하려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1991~92년 한국은 북한과의 포괄적 공동 합의를 통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했다. 93년 미국이 중간에 협상을 떠맡은 것은 남한을 격하하고 호락호락한 상대를 잡으려는 북한의 술책에 말린 결과다. 북한의 계략은 적중했지만, 이런 상황은 정리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우방이자 동반자인 한국의 화해, 번영, 통일을 향한 노력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정리=김성윤기자 gourmet@chosun.com

◈ 제임스 릴리

1996-1997년 : 미 매릴랜드대 중국 문제 연구소장

1991-1993년 : 미 국방 차관보

1989-1991년 : 주중 미국 대사

1986-1989년 : 주한 미국 대사

1975-1978년 : CIA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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