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상선 '영해침범' 정부 부처 움직임

정부 당국자들은 5일 북한 상선들의 우리 영해 침범 사태에 대해 “재발시 강경 대응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재발시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북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국방부
국방부는 이날 사전협의나 통보 없는 영해 침범에 대해선 강력히 대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해 침범이 재발될 경우 뾰족한 묘책이 없어 고심하고 있다. 남북관계와 국제관계 등을 고려하면 경고사격이나 나포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 상선들이 사전통고를 하고 영해로 오는 경우에 대해서도 군 당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군은 현재의 전력 외에 추가로 제주해협에만 10여척 이상의 함정을 더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해협은 하루 평균 300~400척의 선박이 왕래하는 ‘교통밀집’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 북한 상선 아래쪽에 잠수함이 숨어 침투할 경우 기존 대잠장비로는 탐지가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해군 관계자들은 “앞으로 부두에 정박해 있는 해군 선박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동해와 서해를 지키는 함정들까지 모두 남해로 불러들여도 모자랄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 당국자들은 3가지 측면에서 북한 태도에 변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지난 1일 일본 홋카이도를 출항한 북한 선적 1만3900t급 청천강호가 5일 제주해협을 침범하지 않고 제주도 남쪽 항로로 우회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 이날 새벽 제주해협을 통과한 대홍단호가 제주해협 통과 후 “앞으로 영해침범을 하지 않겠다”고 한 대목도 희망적으로 해석한다.

이와 함께 북방한계선(NLL) 침범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군사정전위 비서장 회의를 오는 6일 열자는 전통문을 북측이 지난 4일 수령해간 것도 태도 변화로 거론했다.
/ 이명진기자 mjlee@chosun.com
/ 신동흔기자 dhshin@chosun.com

청와대
야당이 정부의 1차 대응을 “주권 포기”라고 강력 비난하고, 6·15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김동신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지혜롭게 대처하라”하는 짧은 한마디로 지시를 대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은 이번 사태를 그다지 심각하게 해석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이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뭔가 북한의 말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다른 고위관계자도 “우리의 강력한 입장이 전달된 만큼, 북한측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통일부
일본 홋카이도를 출발해 남포항으로 향하던 북한 상선 ‘청천강호’가 5일 새벽 제주해협에 접근했다가, 공해상으로 우회한 것을 계기로 이번 사건이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한 당국자는 “북한 선박이 항로를 바꾼 것은 우리 정부가 4일 임동원 장관 명의의 대북전통문에서 촉구한 ‘재발방지’를 북측이 수용한 것”이라면서 “북한 선박들의 운항을 며칠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북한 선박 현황

‘청진2호’ ‘령군봉호’ ‘백마강호’ ‘대홍단호’ 등 잇따라 우리 영해를 침범했던 상선(상선)들은 북한의 대표적인 무역선이다. 북한의 보유 선박수는 독일 국제해운물류통계(ISL)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300t급 이상 선박이 118척(총 56만6000t), 영국 로이드선박회사 자료에는 180여척 66만7000t으로 등록돼 있다.
한 탈북자는 “대부분의 선박들이 내각의 육해운성에 소속돼 있어 민간선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운송물품은 원유, 시멘트, 냉동수산물, 광석 등이 대부분. 이들 선박이 운항하는 국제항로는 청진~나진~블라디보스토크~나홋카 원산~선봉~나홋카 해주~블라디보스토크 남포~상하이(상해) 청진~오사카(대판) 남포~도쿄(동경) 등이고, 동남아와 호주, 중남미 등을 운항하는 부정기선도 있다.
/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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