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들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최초로 지난 2, 3일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침범한 데 이어 4일에는 해상 휴전선과 다름없는 서해안 백령도 인근 NLL(북방한계선)은 물론, 제주해협, 심지어 동해안 독도 영해까지 잇달아 침범해왔다.

그러나 우리 군당국은 독도에 한해 우리 해경정이 진로를 차단, 영해 침입을 저지했으나 나머지 서·남해안에서는, 지난 3일 정부의 사실상 북한 선박 통행 허용방침에 따라 침범 행위를 묵인했다. ]

북한측의 이 같은 동시다발적인 우리 영해 침범은 6·25 전쟁 이후 유례없는 일로서 북한이 최근 남북 해빙무드를 틈탄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의도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4일 밤 9시가 넘어 원산을 출발, 일본으로 향하던 북한 화물선 국사봉 1호(112)가 독도 영해로 진입하려는 것을 우리 동해 해경 소속 해경정 503호가 가로막아 저지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합참 강창식(姜昌植) 공보실장은 『4일 오후 3시15분쯤 소흑산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 상선 대홍단호(6390급)가 영해를 침범, 영해 기선(基線)을 따라 들락거리며 제주해협 쪽으로 향하다 오후 9시30분쯤 제주해협에 진입, 우리 영해를 가로질러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실장은 또 “우리 해군이 출동해 대응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대홍단호는 사전에 우리측에 영해통과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3일 북한 선박이 추가로 사전 협의없이 영해를 침범할 경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날, 대홍단호에 대해 경고사격이나 나포 등 강경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군 및 해경 함정은 대홍단호에 대해 여러 차례 정선명령을 내렸으나 북한 선박은 이에 불응하며 항해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홍단호는 중국 평산에서 석탄인 고열탄 8560을 싣고 청진으로 이동 중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 3일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무단 침범, 항해했던 북한 상선 청진2호(1만3000t급)가 우리 해군함정의 근접감시를 받으며 4일 오전 11시5분쯤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했다. 북한 선박이 서해 해상에서 북쪽으로 항해하면서 NLL을 넘은 것은 지난 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합참 박정화 해상작전과장(대령)은 『청진2호는 이날 오전 5시쯤 서해 소청도 서남쪽 해상 81㎞ 기점에서 해주를 향해 오른쪽으로 꺾은 뒤 11시5분쯤 백령도와 연평도 사이 NLL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은 또 『이에 앞서 백마강호(2700t급)는 우리 해군함정의 감시를 받으면서 오전 5시10분쯤 동해 NLL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그러나 북측으로부터 사전 통보나 허가요청이 있을 경우 북한 상선의 북방한계선 통과를 사안별로 허용키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북한이 민간선박의 경우 사전통보하거나 허가를 요청해 올 경우 사안에 따라서 NLL을 통과시키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오후 유엔사 비서장인 마틴 글레이서 미 육군대령 명의로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곽영훈 상좌(한국군 중령과 대령 사이 계급)에게 전화 통지문을 보내 『NLL위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오는 6일 오전 10시 군정위 비서실에서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했으며 북한은 곧바로 이를 수령해갔다.
/庾龍源기자 kysu@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