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현·서울대 교수·국제법


북한 상선 3척이 지난 2일과 3일 제주해협을 동에서 서로, 그리고 서에서 동으로 관통한 후 서해 연평도와 백령도 사이의 북방한계선(NLL)을 거쳐 돌아갔다.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와 NLL을 이처럼 공개적으로 침범한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이에 대해 3일 개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번에 한해 영해통과를 허용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북한 당국이 사전통보 및 허가요청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향후 북한이 사전통보 등 적절한 절차를 갖출 경우 영해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NSC의 이런 입장 정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선박의 영해 통과를 허용치 않았던 기본방침의 근본적 수정을 의미한다. 북한 선박의 영해 침범이 있은 지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입장이 정리된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과연 정부가 이러한 입장의 의미나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했는지 궁금하다.

선박이 외국의 영해에서 ‘무해통항권’을 가진다는 것은 잘 확립된 국제법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어디까지나 평화시에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서 적용되는 원칙이다. 법적으로 전시상태에 해당하는 정전협정하의 남북한 간에 평시의 일반국제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정전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군 당국은 북한선박의 우리 영해 통과를 철저히 금지해 왔고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다. 무해통항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북한 상선의 영해 통과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없다.

북측 선박의 조건부 통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NSC의 방침은 안보나 형평성, 그리고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지닌다. 외국 선박이나 항공기가 영토에 근접한다는 것은 안보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이다. 남북한과 같이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책임있는 당국자라면 북측 선박의 영해 통과를 허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안보적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입장이 이러한 측면의 철저한 검토없이 나왔다면 이는 대단히 안이한 것이다.

NSC의 입장은 형평성의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북한은 동해상 12해리 영해 밖에 광대한 ‘군사경계수역’을 설정하여 외국 선박의 접근을 일절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도 유사한 규제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선박은 북한 영해는 물론, 군사경계수역이나 배타적경제수역에도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일방적으로 북측 선박의 조건부 영해통과를 허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먼저 남북한이 상호 영해의 무해통항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순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대응은 북한의 일방적 도발과 우리 측의 무마와 양보라는 지난 수년간의 남북관계의 패턴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남북 간의 진정한 상호신뢰구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상대의 일탈된 행동을 용인하고 보상할 경우 상대는 그러한 행동을 중단해야 할 인센티브를 느끼지 못한다. 그 결과 남북관계는 결국 도발을 자행하는 측의 주도대로 움직이게 된다. 과연 이러한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인지 의문이다. 남북관계가 진정한 신뢰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합의와 관행을 지키고 현상의 변화를 도모할 때는 대화와 협의를 거친다는 기본룰이 지켜져야 한다.

도발의 용인은 또 다른 도발로 이어질 뿐이며 안보를 양보하고 얻어낸 대화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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