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선박 잇단 영해침범 파장

북한 상선의 동시다발적인 한국 영해 침범사건은 한국 군부와 정부를 동시에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다. 군으로선 명백한 영해 침해인데도 이를 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는 점에서 체면도 구기고 군부 내부의 불만으로 번질 수도 있다.

또 정부로선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 판국에 터진 이 사건으로 인해 『햇볕정책에만 안주해 영토보호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강한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바로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노림수를 두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속셈 =지난 2·3일에 이어 4일에도 연달아 북한상선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한 데다가 남·북한 간의 해상휴전선이랄 수 있는 백령도 NLL(북방한계선)까지 침범한 사실은 북한이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거,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일종의 「군사적 작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일반상선들의 단순한 항로단축을 위해서 이런 일을 일으켰다기보다는 안보적으로는 한국 군의 영해 감시권과 능력을 사실상 와해시키고 정치적으로는 국내 여론들을 분열시키려는 고도의 음모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 =외견상 정부는 평상적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정부는 우리 영해는 물론, 군사적으로 민감한 NLL통과에 대해서도 북한 민간선박의 선별적 통과 허용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정한 것은 우선 미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전면 중단된 남북관계를 이 사태로 더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의 강경대응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 민간선박의 NLL 통과를 허용하면 우리도 북한측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그 경우 중장기적으로 남북한 모두 직선항로를 이용해 수송비를 크게 절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침범」을 도리어 호재로 사용하겠다는 얘기나 수긍되는 논리는 아니다.

군 조치 및 반응 =해군은 당초 NLL통과를 막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강경책까지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NLL통과 허용」이라는 정부 결정에 따라 해군의 시나리오는 실행되지 않았다. 청진2호가 NLL 남단 서해상에서 북한쪽으로 우회하자 우리 해군함정은 『백령도 바깥으로 우회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북측 상선은 『해주쪽으로 가겠다』며 그대로 항해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정부가 합참 작전예규와 교전규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한 뒤, 북한과 협상을 벌여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받으며 시간을 두고 개선책을 논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군 일각에선 이번 조치에 대해 합참 작전예규와 유엔사 교전규칙에 따라 북한 선박에 대해 정선명령이나 나포 등 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또 앞으로 북한 선박 통과가 허용될 경우 선박에 대해 일일이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작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일고 있다.
/유용원기자 ky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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