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우리 영해인 제주해협을 침범한 북한상선 3척 가운데 2척이 우리 관할수역인 NLL(북방한계선)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사건은 분명히 북한의 계산된 도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북한의 침범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앞으로 북한이 공식요청하면 북한상선에 대해 국제법상 용인되는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을 인정하겠다고 한발 앞서 나선 것은 지나친 저자세다.

이번 사건의 일차적인 책임은 군당국이 져야 한다. 북한상선들이 우리 영해를 침범했는데도 그것을 미처 몰랐을 뿐 아니라 그 상선들을 공해상으로 몰아내는 과정도 소극적이다 못해 무책임했다. 우리 해군의 퇴거요구에 북한상선들이 『상부의 지시로 제주해협을 통과하겠다』 『제주해협은 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하신 항로이다』라며 응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정선을 명령한뒤 정부방침에 따랐어야 했다. 그런데도 해군은 생필품을 실었다는 북한상선의 말만 믿고 이 상선들이 8~15시간 동안 우리 영해를 운항해도 공해상으로 유도해내는데만 급급했다.

더구나 이들 상선 가운데 2척은 휴전 후 지금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북방한계선을 통과해 북한으로 들어갔다니 이는 북한이 앞으로 이 선례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북한은 북방한계선 내의 수역을 자신들의 영해라 주장하면서 일방적으로 「서해5도 통항질서」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연평해전도 북한 경비정들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런 군을 어떻게 믿고 발을 뻗고 살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불안해진다.

우리는 물론 6·15정신과 남북화해 분위기에 따라 북한상선의 항로단축을 위해 지금까지 적용해 오던 「교전규칙」이 아닌 이른바 무해통항권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도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지, 그것도 없이 군당국이 미리 알아서 기고, 정부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그것을 「추인(追認)」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또 무해통항권을 인정한다 해도 북한측의 사전요청, 우리 당국의 허가와 검증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하며, 그 경우도 호혜적인 원칙이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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