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홍석형 전(前) 국가계획위원장이 현재 함경북도 당위원회 제2비서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23일 청진시에서 개최된 김일성 주석의 현지지도 기념 함북도 보고회 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함경북도 당위원회 홍석형 제2비서가 기념보고를 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60대 초반 정도로 알려진 홍 제2비서는 지난 98년 9월 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국가계획위원장 자리를 박남기 현 위원장에게 내줬으며, 같은달 9일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정권수립 50돌 기념 열병식 때 주석단에 나온 것을 끝으로 2년 8개월 동안 공개석상에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 그가 함북도 제2비서로 일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제2비서 직책의 실체와 그가 지난 93년 12월 국가계획위원장에 임명과 함께 부여받은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도당 제1비서 또는 제2비서라는 직책은 소련의 직제를 모방해 북한이 해방직후 잠깐 사용했을 뿐, 6.25 이후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당에는 여러 명의 비서가 있는데 책임비서, 조직비서, 선전비서의 순으로 위계가 잡혀 있고 그 다음에 경제비서, 근로단체비서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내부용일 뿐 북한 언론은 도당 책임비서 외에 도당 비서들을 그냥 '비서'로 부르며 최근까지도 도당 제2비서란 직책이 언급된 적이 없다.

북한에서 제1비서라는 자리는 지난 96년 1월 종전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청년동맹 안에만 신설됐다.

이와 관련해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각 도당에 제2비서 직을 신설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만약 그러한 직책을 뒀다면 그것은 조직비서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그러나 홍 제2비서는 당내부 사업을 관장하는 조직비서와는 거리가 먼 경제통이므로 도당 조직비서를 맡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홍씨가 유능한 경제관료인 만큼 북한당국이 김책제철연합기업소를 비롯한 주요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는 함북도의 경제적 중요성을 고려, 책임비서 다음 서열에 해당하는 제2비서라는 자리를 만들어 그에게 이 지역 경제를 총괄토록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추측했다.

한편 홍 제2비서가 국가계획위원장 시절 겸임했던 정치국 후보위원 직함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고위간부들의 경우 중대한 과오를 범해 지방 노동자로 추방되지 않는 한 정치국 위원 및 후보위원, 당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 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제2비서라는 직책이 홍씨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라면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국가계획위원장에서 물러난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회의의 주석단 서열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인 최영림 중앙검찰소장 다음인 22번째로 호명됐으며 정권수립 50돌 경축 열병식에서도 백학림 인민보안상 등 군부 인사들 보다 앞선 25번째 서열로 확인됐다.

특히 그가 국가계획위원장 해임을 앞둔 지난 98년 7월 처음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으로 선출된 사실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식통은 북한에서 대의원이 임기를 남겨둔 채 사망할지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선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도당 제2비서가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임한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며 겸임설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더구나 홍 제2비서의 직속 상관인 리근모 함북도당 책임비서가 정치국 후보위원보다 낮은 당중앙위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홍 제2비서가 정치국 후보위원을 겸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북한 방송이 홍 제2비서를 거명하면서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직함을 빼놓은 점도 이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홍석형은 소설 「림꺽정」의 저자인 홍명희 전 내각 부수상의 손자이자 홍기문 전 사회과학원 부원장의 아들이다.

그는 충북 괴산 출신으로 1948년 가족과 함께 월북한 뒤 소련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였으나 김책제철연합기업소 기술자, 압연공장 공장장을 전전하다 지난 84년 정무원(내각 전신) 금속공업부 제1부부장에 전격 발탁됐었다.

이어 지난 86년 북한 최대 제철생산단지인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당 책임비서에 기용되면서 제철산업을 이끄는 주역으로 떠올랐고 이어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발탁됐다.

경제전반에 밝은 그는 이곳에서 당비서로 일하면서 소신있게 업무를 처리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난 93년 12월 북한경제를 총괄 기획하는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승진하면서 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소식통들은 당시 김정일 총비서가 양반이면서 자본가 출신으로 북한 경제를 잘 이끌었던 정준택 전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의 실례를 들면서 '양반가문출신인 만큼 소신을 갖고 국가경제를 잘 기획하라는 의미에서 그(홍석형)를 임명했다'고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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