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경고, ‘협박성’ 발언이 난무하고,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미 비난 발언의 빈도와 수준이 갈수록 높아져 ‘핵동결 해제’ 위협까지 나왔다. 미국은 대북 정책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해보인다.

북한의 대미 비난

북한의 대미 비난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 16일에는 미국이 경수로 공사지연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 ‘흑연감속로(원자로의 한 형태) 재가동’을 통한 ‘핵동결 해제’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핵을 고리로 한 ‘위협성’ 발언 등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임박한 대미협상을 앞둔 전술적 압박용’(고유환·동국대 교수, 송영대·전 통일원 차관)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과거처럼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상황도 아니고,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의 경제난을 풀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도 “북한이 자꾸 비난 발언을 하는 것은 역으로 대화를 하자는 뜻을 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대미 비난과 경고는 미국에 대해 북측 입장을 확고하게 알리려는 의도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최근의 ‘흑연감속로 재가동’ 주장 등을 보면,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중국과 연계하고 남한을 끌어들인다면 미·북 관계가 어그러져도 잃을 게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며 북한의 ‘협박’을 단순히 엄포용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미국의 대북 메시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대북 메시지가 점차 강경해지는 추세다.

콜린 파월(Colin Powell)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이 선택한 시기와 장소에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북 대화는 곧 재개하나, 북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반대급부를 제공하면서까지 미·북 관계를 개선시키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 강경 메시지를 통해, ‘감시와 검증(monitor and verification)’을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당국자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고위 관리들이 강도는 다르지만 북한을 감시하고 검증하겠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강조했다”며 “이는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 의회와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 이를 통해 미·북 대화에 앞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미국의 발언일지

- 파월 국무장관(2월 7일)
“미사일 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 태도를 봐가며 앞으로 미·북 관계개선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2월 22일)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북한에 도움이 안 된다. 북한은 주의깊게 관찰돼야 한다.”

- 부시 대통령(3월 8일)
“북한 지도자에 대해 어느 정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 파월 국무장관(4월 11일)
“북한은 아직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에 매우 심각한 위협을 주는 국가다.”

- 럼즈펠드 국방장관(5월 1일)
“이라크나 이란, 북한의 공격에 취약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어리석고 위험하다.”

- 파월 국무장관(5월 14일)
“우리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돼 적절한 시기에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함을 이해하고 있다.”

- 라이스 안보보좌관(5월 15일)
“미국은 한국의 햇볕정책을 지지하지만 북한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 북한의 발언일지

- 외무성대변인 담화(2월 23일)
“부시 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면, 제네바 핵 합의와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

- 평양방송(3월 21일)
“미국이 우리를 건드리면 보복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 원정군은 한 놈도 살아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노동신문(3월 31일)
“검증 등의 전제조건을 들고 나오는 세력과는 대화도 관계개선도 하지 않을 것이다.”

- 노동신문(4월 16일)
“미제 침략군의 위협을 받는 조건에서는 무력감축을 할 수 없다. 미국은 감축문제를 논의하기 전 미군부터 철수해야 한다.”

- 노동신문(5월 1일)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결코 구걸하지 않는다. 미제가 광고하는 (북의) 위협은 완전 모략이다.”

- 노동신문(5월 13일)
“MD체계 수립결정으로 (미국이) 핵 광신자, 평화 파괴자, 불량배 국가임을 드러냈다. 우리의 대응조치 및 군비 경쟁은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다.”

- 조선중앙통신(5월 16일)
“경수로 완공 지연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핵동결 해제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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