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적으로 폐쇄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외환 거래 실력은 국제적이다. 「날아가는 돈 잡기」로 불리는 환 투기에서 북한이 벌어들이는 돈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짭짤한 수준 이상으로 파악된다.

북한은 이미 60년대 중반에 조선무역은행에 외환딜링룸인 ‘환자조작국’을 설치, 외환거래 분야를 육성해 왔다. 당시 북한은 프랑스로부터 프랑화로 도입한 차관을 미 달러화로 바꿔두었는데 그 후 6개월 동안에 달러가 크게 오르면서 상당한 환차익을 남겼다. 김일성은 이 보고를 받고 “그렇게 돈 버는 방법이 자본주의 세계에 있느냐”고 놀라면서 조선무역은행부터 외환거래 전문 부서를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환자조작국이다.

지금은 조선무역은행과 조선대성은행 등 대부분의 은행에 설치된 환자조작국의 직원은 각각 8명 정도씩이다. 모든 외환거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담당하며 외화벌이 총사령부격인 노동당 39호실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딜러인 환자조작국 직원이 거래 전표를 만들어 책임지도원을 거쳐 국장에게 올리면 국장은 그 전표를 당 39호실로 넘겨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뒤 당 39호실은 ‘김정일 서기실’로부터 최종 결재를 받는다. 북한에선 단 1달러라도 김정일의 승인이 없으면 지출이 불가능하다.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에 위치한 당 39호실 건물과 중앙당 청사 3층의 김정일 서기실 간에는 이 같은 서류를 말이 형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긴 통인 ‘비통신망’(飛通信網)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환자조작국의 일반적인 외환거래 규모는 크지 않다. 국가채무 상환이 불가능한 모라토리엄 상태라서 외국 투자은행들처럼 신용을 바탕으로 한 정식 외환거래는 못하고 거래하고 싶은 금액의 5%를 증거금으로 내는 ‘마진콜’(Margin Callㆍ증거금적립)거래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0만 달러의 외환거래를 하기 위해선 외국 거래 은행에 5%인 100만 달러를 집어 넣어야 하고 그래야 20배에 달하는 2000만 달러의 신용한도(Credit Line)를 받아 그 한도 안에서 외환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 90년대 들어 경제가 악화하면서 외화가 절대 부족해지자 해외방송 청취 허용 등 환자조작국이 환차익을 내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아끼지 않고 지원하고 있다.

북한이 재미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환투기 기술은 특정 외화를 다른 외화로 바꾸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크로스’(Cross)다. 지난 82년에 조선대성은행 5국(군 자금 담당ㆍ현재 조선창광신용은행)은 5억 달러 어치의 무기 판매 대금을 이 방식을 이용,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판매 대금을 파운드화로 들여 왔다가 엔화로 바꾸었는데 얼마 안 지나 파운드화가 급락하고 엔화가 크게 오르면서 3억 달러 어치의 환차익을 남겼다는 것이다.

북한은 92년에도 큰 환차익을 기록했다. 당시 로마소재 북한 금융회사는 1억 달러 어치의 이탈리아 리라화를 갖고 있었으나 리라가 역외 송금이 안돼 이를 달러로 바꾸려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영국에서 1억 달러 상당의 리라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어 서로 1억 달러 어치의 리라와 파운드를 스왑(교환)하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계약 직후 리라화는 급락한 반면 파운드화는 소폭 올라 북한은 4000만 달러의 이익을 거둔 것이다.

북한의 외환거래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데는 지난 80년대부터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의 은행들에 연수생을 파견, 외환거래 관련 각종 선진기술을 습득해 온 것이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외환거래 분야 인력은 주로 김일성종합대ㆍ국제관계대ㆍ인민경제대 등 세 대학에 설치된 국제금융반 졸업생 중에서 배출되고 있다. 은행이나 무역기관들은 이들 졸업생을 선발한 뒤 각종 외화벌이 관련 교육을 다시 한다고 한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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