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등 정부 각 부처가 내년도 대북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턱없이 크게 늘려 요청한 것은 어려운 우리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북측에 무작정 ‘퍼주기’로 작정한 것인지 국민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최근 재정경제부 통일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4개 부처가 내년도 예산편성을 앞두고 기획예산처에 요구한 대북 지원사업 요구액은 무려 1조800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요구액은 올해 대북 지원예산 5600억원보다 3배나 많은 것이며 김 대통령이 작년 한 인터뷰에서 밝힌 ‘현 정권 들어서 지원한 총 지원액 2억1900만달러(2640여억원)’보다 6.8배가 많은 돈이다.

물론 정부가 요청한 요구액이 그대로 정부예산안에 포함되고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보면 정부부처들은 실제 소요예산보다 훨씬 더 많이 부풀려 예산을 요구하는 것이 관행이 되다시피 해왔다. 그같은 관행은 요즘처럼 경기위축이나 수출부진 등 경제여건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구나 혈세의 낭비로 규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최근 실업자는 100만을 넘어섰고 점심도 해결 못하는 결식학생 수가 수만명을 헤아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렇게 헤프게 북한에 선심성 경비를 퍼부을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대북사업에 퍼주기식 예산을 편성하는 공무원들의 의식이나 사업 우선순위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남쪽의 어려운 문제는 제쳐놓고 북측에만 ‘햇볕’을 쬐이려고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개성공단 입주 지원비로 8300억원을 요청했는데, 이미 경영실패와 자금난으로 사업추진 능력을 상실한 현대가 추진하는 개성공단 사업에 어떻게 1조원 가까운 돈을 퍼붓는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또 교역협력 사업손실 보조금 등의 명목으로 통일부가 요청한 8000억원도 그 용도가 모호하다. 손실보조금이란 바로 밑지면 밑진 만큼 도와주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퍼주기식 협력’이고 시혜성 지원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같은 ‘퍼주기식 예산’ 요청이 보도된 시점과 때를 같이하여 김 대통령이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난데 대해 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작년 7월의 독대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회동에서 청와대와 삼성측은 ‘은밀한 얘기’가 없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대북사업이 불가능해진 현대를 대신해 삼성이 대북사업에 참여해줄 것을 청와대가 요청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에 많은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요청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대가 대북사업으로 큰 타격을 받은데 이어 비교적 재무구조가 건전한 삼성마저 대북사업의 ‘수렁’에 빠뜨리는 게 아닌가 많은 국민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 정부는 대북사업을 민간기업의 자의에 맡겨야 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